허니 너에게 답장하는 형식의 이 브런치의 회차별 제목은 너의 브런치 제목만을 보고 댓글달듯 달아둔 거야. 무슨 내용을 너가 적을지도 모른채 말이지. 3회차 <따로, 또 같이>에서 너는 하루와 함께 성장한 걸음들을 담아두었더라. 고된 성장통을 겪은 그 긴 시간을 몇 문장으로 축출한 허니 너의 담담함에 '와..'하고 감탄이 나왔어. 그 중 나도 지켜보았던 구간들이 있어서 알잖아. 네가 얼마나 거친 고개를 넘었어야만 했는지를. ‘가장’의 역할을 짊어지고 걸어 온 너의 걸음의 무게를 그 때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어. 그저 추측하고 상상할 뿐이었는데 재미있게도 나도 이제 내 삶을 통해 직접 경험을 하고 있네. 그 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그 무게를 말이야. 그 무게를 직접 경험하고 너의 추출물을 읽으니 그 감탄이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려서 나올 수 밖에!
네가 하루와 함께 성장해왔듯 너와 나도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성장하고 있네. 인생이 소풍이네 여행이네 뭐 이런 표현을 하곤 하잖아. 여행메이트라는 표현이 익숙한 것 처럼 우리 사이는 ‘mate : a person who lives with you, works in the same place as you’ 가 꽤 잘 어울리는 사이 같지 않니? 참 비슷한 여행 중인 것 같아. 그래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지만 이렇게 따라 걸으며 의식의 흐름대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고, 적고 있잖아. 동문서답 같아도 어쩐지 이어지는 느낌인 이유는 우리가 mate 라서라고 우겨볼래. :)
<따로, 또 같이>라는 제목을 보며 내 안에서 올라온 답장은 <의존과 의지>였어.
의지라는 한국어 소리가 아이러니해.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과 역량이라는 뜻의 Will 意志
몸이나 마음을 다른 것에 기대어 도움을 받는다는 뜻의 Lean, Dependence 依支
매우 독립적인 느낌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의지‘라는 단어에는 기대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는 의존성의 뜻도 있음을 보며 독립적이라는 것이 협력,협동의 반대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려.
신이 우리에게 주셨다는 자유의지라는 것도 어쩌면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마음과 역량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사랑도 포함 된 것 같아.
나는 막내라 참 잘 기대는 편이었어. 국민학교 1학년 첫 방학의 개학 전 날 밤에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 우유각으로 연필꽂이를 만들어가야했는데 까먹었던 거지. 그래서 언니와 부모님이 늦은 밤에 부랴부랴 대신 만들어주시고 나는 졸리다고 잠들어버렸어. 지금 같으면 숙제를 안 해가서 혼나면 혼났지 그렇게 대신 해달라고 하지 못 할거야. 그건 틀린 것이고, 나답지 못하다며 말이야. 온 세상의 가르침이 그러하듯 나 자신에게도, 내 딸아이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말이야.
그런데 요즘 나는 그 때처럼 기댄다는 느낌을 되찾고 싶어. 분명 내 삶을 혼자서 다 감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머리로 알고, 모든 순간 기대고 있으면서도 ‘의지하고 있다‘라는 감각을 잃은지 오래된 것 같아. 마음 편하게 다 맡기고 힘을 빼고 삶에게 맡기며 흐르는 그 감각말이야. 의지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니 당연하다 여기게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의식적으로 의지를 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 모자란 행동’처럼 나를 심판하며 가로 막기도 하고 말이지.
의지를 내는 것만 남고, 의지하는 것을 잃어버린거야. 의지함을 기억하는 것은 감사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 반대로 의지하고 있음을 놓치는 순간 풍선 손잡이를 풍선이 날아가버리듯 감사도 훌렁~ 빠져나가는 것 같기도 해. 익숙함과 당연함은 감사를 잃게 하잖아.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는 것 나를 심판하면 사랑 받는 것을 거부하는 것 같아. 방학 숙제를 온 가족들이 나를 대신해서 해주었던 그 밤을 떠올리면 내 심장은 따스해지거든. 잘 못된 행동이라고 나를 꾸짖기보다는 나 그만큼 사랑받았구나ㅡ라며 미소가 지어져. 그런데 지금 나는 의지하게되면 굉장히 자책하고 스스로를 꾸짖지.
인간에게 신이 약함을 주신 까닭은 신과 협력하고, 함께 여행길을 걷는 이들과 서로 의지하며 여행하라는 것 아닐까. 혼자서 다 해내려고만 한 나를 토닥여. 어차피 혼자서 다 하고 있지도 않았고, 지금 든 ‘가장’의 무게 또한 세상과 나눠들면 된다고. 이 세상은 서로 도와 존재하는 ’공존‘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자, 이제부터는 의지갖고 의지하고 의지되는 나로 살아갈래. <따로, 또 같이> 그렇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