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인생이라는 단 한 번뿐인 여정에서

by 묘연한삶

하루가 태어나고 2년 동안 24시간 365일 거의 독박육아를 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처음 해보는 '엄마'였고, '가장'이었다. 힘들었지만, 책임지고자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운이 좋게도 기존에 다니던 회사에서 상황을 봐주어서, 아이를 데리고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낮잠을 자는 1-2시간 동안 일에 집중하기 위해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날들이었다.


작은 사무실에서 말 못 하는 아이와 둘이 있는 시간은 외로웠고,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딱 1시간만 혼자 카페에 가서 멍하니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소소한 것이 꿈같은 때였다. 그렇게 버킷리스트 첫번째 줄이 생겨났다.


그때의 내가 내린 결론은 차를 사는 것이었다. 사실 경제적으로 차를 산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빚을 내어 중고로 경차를 한 대 구매했다. 그리고, 그 주말부터 아이와 엄마를 태우고 계곡으로, 바다로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아이를 유모차를 태우고 집 앞 공원까지 걸어갔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에서, 편도 1-2시간 거리까지 다녀올 수 있을 만큼 단숨에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


사수 없이 매일 혼자 일해야 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미용실 가는 것조차 한참을 망설였으니, 잠시 시간을 내어 친구와 1:1로 약속을 정해 만나는 건 나에게 큰 사치였다. 친구들은 아직 모두 미혼이었고, 한창 사회생활을 하는 시기였다. 누군가에게 '도와줘'라고 말하기엔 단단하지 못했다. 그렇게 다양한 커뮤니티에 문을 두드렸다. 내가 아이 때문에 갑자기 나가지 못해도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으니까.


그 안에서 저마다의 재능으로 빛을 발하는, 정말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작은 모임도 열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또 하나의 문이 되어 주었고 지금도 새로운 길을 계속해서 열어주는 통로가 되어준다.


이후에 이직을 하고 많은 일들을 했지만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았고 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외주를 하기엔 받은 돈만큼의 결과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고, 육아에는 변수가 많았기에 타임 리밋을 지키지 못할까 불안함이 있었다.


그래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행사를 기획하고, 디자인했다. 주변에서 돈도 받지 않는 일을 왜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회사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에서 나의 디자인이 빛을 내는 것을 보니 뿌듯했다. '기버 Giver’ 들로만 모인 모임의 힘은 대단했다.


운영진을 하며 라이브커머스 세션에서 MD역할도 해보게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즐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로 인터뷰와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나갈 기회들이 이어졌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매년 한 해가 지날 때마다 1년 전의 나보다 성장한 나의 모습을 관찰하며, 그토록 스스로 인정해주지 못했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누구의 인정보다 컸던 나에게 인정받는 느낌.


마냥 긍정적이었다거나, 혹은 너무 부정적이어서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어.'라고 스스로를 계속 가두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 허니씨는 좋겠다. 아직 젊고, 전문직이라서.'

' 너니까 그래. 나는 아직 너만큼 배움에 의지가 없어.'

' 제대로 준비를 다 못해서, 아직 시작을 못했어.'


내가 경험해 볼 수 있는 일이 많았던 건, 그저 많이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작은 시간도 내기 어려운, 작은 동네를 벗어날 수조차 없는 상자 속 사람이었다.

(2022.11)



시간과 공간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사람

하지 못할 이유가 누구보다 가득했던 사람

하지만, 그래도 계속 시도한 사람


그리고 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그건

‘하루’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인 거라고

절대 아이를 탓하진 않을 거라 다짐한 사람

그 시절의 나를 그렇게 기억해 본다.


하루는 누구보다 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다.

함께할 때에도, 따로 있을 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