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

엄마의 진화

by 묘연한삶

내 것이 아닌, 하지만 짊어져야 하는 다른 이의 짐. 1년 전의 나는 그것에 순응하는 낙타였다. 24시간 365일 풀 독박 육아. 그리고 그것과 생계를 위한 일과 살림의 병행. 남의 도움 없이는 20분 가만히 앉아서 밥 먹는 기본 욕구 하나 마음 편하게 충족하기 버겁던 나는 어쩌다 사자가 되어버린 걸까.



자기의 것이 아니지만 왜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낙타의 삶'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자신의 의지대로 자율적으로 행동하지만, 그 정도의 소극적 자유만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자의 삶' 그리고 어떠한 억압과 구속에도 불구하고, 순진무구하게 갈등과 편견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어린아이의 삶'



니체는 그것이 한 단계 진화라 표현했다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날뛰는 한 마리 짐승에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감정을 숨기는 장치를 잃은 것처럼 한 줌의 제어 없이 날 것 그대로의 그것을 퍼부어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아니 우린 '하루'가 어린이집에 간 이후로 바람이 멈춘 줄로만 알았다. 왠지 모르게 가슴 저 깊은 끝 속에서 치밀어 오르던 불안과 분노가 이끄는 폭풍이. 얕게 숨 쉴 정도의 틈, 여전히 바쁘고 가쁘지만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몇 개월간 끊임없이 살 구멍을 파대는 지렁이 마냥 참 야무지게도 움직였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는 1시간의 개인 시간도 사치였던 6월, 나는 갑자기 1년 치 운동을 끊었다. 8월에 '하루'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프리랜서가 되었고, 내친김에 작은 중고차까지 질렀다. 그리고 7월에 우연한 기회로 얻게 된 만남을 인연으로 이어내 겸업 제안을 받기에 이르렀다. 회사, 집, 회사, 집... 주말엔 집 앞 쇼핑몰 심지어 그 모든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하던 내가,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그리고 어쩌면 약간의 경제적 여유까지) 순식간에 얻어낸 것이다.


그렇게 다 좋은 게 좋은 거, 나쁜 것도 언젠간 흘러가지라는 느낌으로 다 괜찮아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왜지. 왜 말도 안 되는 포인트에서 터져버린 걸까.

"안 일어날 거야?"그의 짜증 섞인 한 마디에.

우린 모든 것을 시간에 흘려보내기만 했을 뿐 제대로 그 매듭을 풀려고 하지 않아서였을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사건은 잊혀도 감정은 남는다.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 피도 눈물도 없이, 가족도 끊어 냈던 나는. 아마 이 일련의 일들을 아니 이 일련의 감정 소용돌이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신도 그럴까.

(2018)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나는 이제 당신이 밉지 않다.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때에 내가 배워야 했던 것이

있음을 믿는다.


조금은 더 진화했을까.

(20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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