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와 바람, 그리고 누구

빛타래

by Breeze

조성모의 가시나무 노래 가사 중에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구절이 있잖아. 요즘 나는 내 속에 참 많은 내가 있는 것 같고, 내가 많이 가난하구나-라고 느껴. 외로움이나 고독과는 다른 가난인데, 휑하고 칼바람이 부는 황무지 위의 가시나무 같은 느낌이야. 내 사랑은 소유하지만 소유하지 않는 옹졸하고 비겁한 모습이지. 사랑은 소유하려는 순간 고통이니까, 자유를 누리되 한 손에는 소유하지 않는 소유를 붙잡으며 응큼하게 사랑하는 것이야. 생선살만 싹 발라먹으려는 고약한 사랑 같기도 하고, 사랑의 고통은 피하려 하는 비겁한 겁쟁이 같지. 이러한 나를 마주할 때 나의 시리고 가난한 마음에 참 춥다. 재미있는 것은 또 한쪽에는 황금빛 태양처럼 모든 것을 휘감듯 안아주고 비춰주는 따스함이 내 속에 가득 있음도 느껴. 혼란스럽지? 응, 말 그대로 정말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은 것 같아.


때때로 이러한 상상을 해봐. 내가 만약 여러 가지 빛의 파동의 집합체라면, 그 빛에 기억된 나는 무수히 많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래서 전생체험 같은 것을 하면 한 가지 전생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잖아. 나는 여러 빛들이 실타래처럼 뭉쳐진 빛타래로 이런저런 많은 내가 다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는 거지. 네가 니체의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로 진화여정을 말하길래 나도 한번 내 속에 진화하려고 꿈틀대는 수많은 나에 대한 상상을 떠들어보아.


거울 앞에서 불혹의 나잇값을 얹은 나를 바라보며 언제 이렇게 누가 봐도 어른인 얼굴을 하고 있나 싶어서 낯설더라. '천진난만한 어른이'를 주창해 온 나인데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까지 진화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마음은 가난하고 머리는 무거운 불혹의 짐승이 오늘따라 부끄러워진다.




언젠가 입원복을 입고 그와 함께 병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진 한 마디를 기억하고 있어.


잘 놀다 갑니다


난 그 후부터 내 묘비명은 <잘 놀다 갑니다>라고 막연하게 정해버렸지. 무엇을 하든 놀이하듯 재미있게 즐기면서 살다가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며 말이야. 그런데 그들이 하늘로 떠난 뒤 알게 되었어. 진짜로 사랑하는 그와 그녀랑 놀려고 온 내 속의 내가 돌아가버린 것을 말이야. 그 후부터는 놀이하듯 즐기는 감각을 잊어버렸거든. 아까 말한 빛타래에 뭉쳐있던 그 빛줄기는 그들과 같이 풀려서 ’나‘라는 덩어리에서 날아가버린 것 같아.

이 세상이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아이 같지만 이미 남겨온 발자국의 몫을 짊어진 낙타처럼 꾸역꾸역 비틀거리다가 끊임없이 자유를 포효하는 사자가 되지. 그러다가 지구 생활이 연극무대 같이 느껴지는 시점에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어느 날 위버멘쉬가 되어가는 걸까? 싶어지는 거지.


잘 놀다가 버린 나는 돌아올까? 새로운 빛줄기가 빛타래에 엮어질까? 모르겠어. 노오란 보름달은 풍성하기만 한데 아직 궁핍한 나는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내 영혼이 발견한 내 이름은 ‘브리즈 레인보우‘. 오늘 글의 제목처럼 무지개와 바람이야.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고 쓰고 있는 나는 내 속에 수많은 나들 중 누구ㅡ




프롬프트 없었는제 지피티가 주었던 뜬금포 이미지, 빛타래 상상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