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용서해, 고마워, 사랑해

by Breeze

지난주 션과 함께 광안리로 겨울방학 여행을 온 허니, 우리의 엄마 역할극은 막이 오르고 그 사이사이 서로를 만났지. 즐거웠고 소중했고 고마웠어. 너의 산소호흡기는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대답에 끄덕이며 웃음이 나오더라. 서울을 출발하는 날 아침,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션에게 인사하고 베이글을 사 오던 너를 보며 유유히 흐르는 미리내 같다고 느꼈거든. 역할극을 하고 있지만 역할과 '나'는 동일시되지 않는 모습 - 물과 기름처럼, 역할과 정체성이 섞이지 않고 맞닿아 있는 그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는 너를 선명하게 보았어. 그래서 너의 산소호흡기는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네 대답에 허니답다며 끄덕일 수밖에 없었단 이야기야. 자기 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지. 아름다웠어.


네가 이번 글의 제목으로 택한 주홍 글씨라는 단어에는 특별한 질감이 느껴져. 주홍 글씨에 원래 엮인 사연 때문일까, 마치 내 전생의 한 부분인 것처럼 아련해지고 아프고 분노하게 되고 애틋하고 미안하고 그래. 풍만한 여성의 가슴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굳은 살의 거칠거칠함과 채찍질로 깊게 패인 상처의 깔깔함이 느껴지는 단어야. 네가 질문한 품 안에 숨겨놓은 가장 어두운 면 - A도 어쩐지 내겐 이런 느낌으로 와닿네. 난 꿈속에서 나의 A를 마주하곤 해. 눈을 뜬 인식의 세계에서는 어찌나 그리도 꽁꽁 싸매고 있는 나인지 말이야.


인생을 살면서 딱 한번 의도적으로 불법을 저지른 적이 있어. 내가 끝자락에 닥쳐보니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내 중심의 철칙, '거짓말하면 안 된다'를 내려놓게 되더라고. 사랑하는 이를 내가 구해야 한다는 오만함과 어리석음은 내가 가던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게 했지. '만약 이 거짓말이 걸려서 감옥에 가야 하게 되더라도 그를 구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야. 거짓이지만 최후의 보루를 알려준 이도 나를 말렸었어. 그런데 나는 그를 믿는다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는데 한참 뒤 내가 알게 된 것은 우주의 흐름은 역행할 수 없으며,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마주할 뿐이었지. 우주에는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흐름이 있고, 나는 그 흐름을 벗어날 수 없는, 그 궤도 안에서 '나'라는 정체성이 가진 색연필로 고유한 의미를 찾고 엮어가며 주어진 삶을 번역하고,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아가며 내 삶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 사실을 알았을 땐 발목을 잘라야지만 춤을 멈출 수 있는 '빨간 구두'가 떠오르며 오싹함과 엄청난 공포를 느꼈고, 동시에 반대로 엄청난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했어. 극과 극은 만난다는 것이 또 한 번 격하게 체감되었지.


어제 기차를 타고 내려오며 본 드라마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마지막 회에 나온 대사가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괜찮아. 내가 미래의 어떤 순간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결과를 짐작한다고 해서 그 과정과 의미까지 다 아는 것은 아닌 것을 배웠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사랑에, 우리 생애에 어떤 결말이 다가오더라도 그 과정을 다 살아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거니까."


어쩌면 한 번의 생으로 다 알지 못할 깊은 것들은 몇 번의 생에 걸쳐서 과정을 다 살아내어 알게 되는 것들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 비록 꿈속에서만 뚜껑이 열고 마주할 수 있는 A라 할지라도 말이야.

'미안해요. 용서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라는 네 마디로 마음을 정화하는 하와이식 치유법, 호오포노포노라고 있잖아. 모든 말이 다 사라지고 딱, 1가지만 남는다면 '사랑해'가 아닐까 싶어. 미안해, 용서해, 고마워 - 이 말들도 사랑해 한 마디에 다 담긴 뜻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에서 모두 떼어내어 사과하고, 용서를 청하고, 감사를 전해 보는 이유는 A와 B가 극과 극으로 만난다 해도 그 사이에 있는 의미들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싶은 거야.


허니가 적은 '괜찮아. 어찌 되었든 서쪽 마녀는 스스로를 사랑할 테니.'라는 맺음은 얼음을 동동 띄운 사이다를 심장에 부은 것 같았어. 서쪽 마녀를 향한 시기, 질투, 부러움일까. 난 나를 용서하고, 용서하고, 용서하려고 하다가 포기했거든. 지금은 내가 스스로는 나를 용서할 수 없음을 받아들였어. 할 수 없는 것을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던 거지. 예전에 내가 그를 살리겠다고 발버둥 쳤듯이 말이야. 스스로를 용서하기 위해 할 만큼 다 애쓰고, 기다릴 만큼 기다린 후에 결국 이 '용서'는 Give up! 위로 올려 드렸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신에게 맡기겠다고. God's plan not mine. 신의 뜻대로 하소서- 내 문장은 이렇게 맺어져. '괜찮아. 어찌 되었든 클로버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음을 알았으니.'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일, 알 수 없음을 답안지에 적을 수 있는 태도, 내려놓음과 Give up 표현의 의미를 알고 행하는 일 ㅡ 그러므로 사르트르가 말한 B와 D사이의 C라는 인생을 멈추지 않고 자유롭게 즐기면 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어. 물론 살아내야 할 것들이 아직 많기 때문에 알게 될 것도 더 많이 있겠지만 오늘의 나는 여기까지야. 미안해, 용서해, 고마워, 사랑해. 너에게 용서를 구하면서도 네가 나를 용서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진심을 다해 숙여 말해. 나조차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못하는 것을 너는 해달라는 것은 너무 억측이잖아. 대신 이 모든 네 마디를 너뿐만 아니라 인간 너머 더 큰 존재와 흐름에 도움을 청해봐. 언젠가 나도 , 너도 서쪽 마녀처럼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꼭 안아주는 금빛가루의 포옹을 바라며 말이야.


미안해, 용서해, 고마워, 사랑해. 오늘도 충분해.


A Walk in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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