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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Jan 29. 2023

다정한 사슬, 관계 맺기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 하지만 첫번째로 널 보고 널 생각한 건 나였기 때문에 내가 온 거야."


"나는 탄소 대사를 하지 않는데도 네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싶었어. 촉각이 거의 퇴화했는데도 얼굴과 목을 만져보고 싶었어. 들을 수 있는 음역이 아예 다른데도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너를 위한, 너에게만 맞춘 감각변환기를 마련하는데 긴 시간이 들었어."


위 대사들을 읽기 전과 후로 이 책에 대한 저의 인상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잘 녹여낸 SF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었다면, 이 문장 이후로는 이 로맨스를 이야기하는데 SF라는 배경은 거들 뿐이라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세상에, 이렇게 사랑 넘치면서도 설레는 고백은 살면서 처음 읽어본 것 같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저는 로맨스라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상당히 적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 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집단 지성체의 외계인 중 하나가, 세상을 아끼고 사랑하는 내 모습에 반해 그의 세상 전체가 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어렸을 때 읽은 이영도의 '피를 마시는 새'라는 판타지 소설 중 한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약혼녀가 별 것 아닌 죄로 감옥에 갇히자, 그를 구하기 위해 황제의 기분을 풀어주려 뭐든 하려는 대장군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의 사랑의 경쟁자(?)는 결국 그 방법을 기다리지 못하고 여자를 탈옥시키고 황제에게 전쟁의 빌미를 주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경쟁자의 아버지가 '대장군은 그 여자에게 자기를 사랑하는 세상을 주려고 했는데, 너가 한 일이 뭔지 돌아보라'며 쓴소리를 합니다. 아버지 식으로 비유하자면 온통 그 여자를 원망하는 세상을 선사한 것이겠죠. 물론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보다는 여러 사건 중 하나로 다루며 건조하게 묘사하고 있는데다가 대장군도 실은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딱히 로맨틱함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은 해볼만 합니다. 얼마나 커다란 사랑인지에 대해서요.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감정은 주변인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한다면 나 역시 그를 사랑하고 아끼고 싶어지는 것이 생존을 위한 본능과도 같은 일일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공동체를 단단하고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실제로 연애를 할 때에도 상대방이 나를 자신의 주변인에게 잘 소개해 주느냐 아니냐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죠. 무의식 중에도 그 공동체에 내가 잘 받아들여져서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아닌지를 판단할 좋은 근거로 활용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본능 때문인 걸까요? 상대의 세상 전체가 내 꿈을 꾸고 있다는 말이 설레는 건. 주인공 한아 역시 저 대사를 포함해 외계인이 자신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며, 지구로 오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등을 듣고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외계인에게 기회를 주게 됩니다.


사실 이 외계인이 사랑에 빠진 계기도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너는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 자매로 생각했어.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 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는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의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었어. 나는 너의 그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이해할 수 없는데도 반짝거려서 온통 정신을 빼앗기게 되는 것. 살다보면 그런 식으로 사랑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일본어에서는 아예 "気になる(키니나루, 신경 쓰이다)"라는 표현으로 '신경이 쓰이다, (사랑의 의미로) 마음이 가다'라는 뜻을 동시에 표현 합니다. 교환학생 당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향해 쟤 대체 왜 저러는지 신경 쓰인다고 얘기하면 친구들이 웃으며 '너 걔 좋아하는구나?'하는 것이 귀찮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쨌든 관심이 생긴 것은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그렇게 삶에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아무튼 자기보다 더 큰 것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은 외계인이 봐도 매력적이지만 지구인이 봐도 매력적입니다. 패스트패션에 문제를 제기하며 작은 가게에서 못 쓰게 되었지만 오래도록 입고 아껴온 옷들을 다시 되살리는 작업을 해서 버려지는 옷이 없게 하는 작업을 하는 한아는 지구와 이 땅의 생명들에게 아주 큰 사랑과 관심을 갖고 실천까지 하고 있는 다정한 사람이니까요.


얼마나 다정하냐면, 외계인의 우주 자유여행권과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를 맞바꾸고 떠나버린 전 연인을 욕할 때 이렇게 하는 사람입니다. "다이옥신 같은 새끼, 미세먼지 같은, 아니 미세 플라스틱 같은 새끼, 낙진 같은 새끼, 옥시벤존, 옥시녹세이트 같은 새끼, 음식물 쓰레기 같은 새끼, 더러운, 정말 더러운 새끼, 밑바닥까지 더러운 새끼, 우주의 가장 끔찍한 곳에서 객사나 해라......"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드러내는 한편, 환경 문제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도 잘 드러나는 나쁜 것들의 모음 쯤 되겠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단편 모음집 '목소리를 드릴게요'에 이어 지금 그의 작품을 두번째로 읽고 있는데, 확실히 세계관이 따뜻하고 사랑이 넘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등장인물들 역시도 작가의 영향을 받아 이 세계에 확실하게 연결되어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들입니다. 지렁이 한마리조차도 우리 지구에서 함께 살고 있는 소중한 동료로 인식하고 있지요.


세상을 사랑하는 한아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한아의 전 남자친구 경민입니다. 경민은 어느 날 문득 만난 외계인의 제안을 덥썩 받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지 없을지 모를 우주 여행에 훌쩍 떠나버릴 정도로 이 세상에 미련이 없이 어딘가 붕 떠있는 사람입니다. 가족도 친구들도 바뀌어버린 경민을 못알아볼 정도로 피상적인 관계만을 맺고 있죠. 이런 경민에 대해 묘사하며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나옵니다. "한아의 사랑, 한아에 대한사랑 만으로는 그 모든 관계와 한 사람을 세계에 얽어매는 다정한 사슬들을 대신 할 수는 없었다.", "질량과 질감이 다른 그 모든 관계들을 (한아) 혼자 다 대신할 수는 없었어.", "다음 번에는 속하게 된 곳을 더 사랑할 수 있거나, 아니면 함께 떠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면 좋겠어. 여기도 아니고 나도 아니었지만,  다음번에는 꼭."



어쩌면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이대로면 지구가 멸망한다, 인류가 멸망한다, 이런 공포스러운 선전문구를 동원하기 보다는 정세랑 작가의 접근 방식을 따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을 이 세계에 얽매는 다정한 사슬들을 통해, 모든 질량과 질감이 다른 관계들을 통해 자신이 속하게 된 곳을 더 사랑할 수 있게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환경 문제를 자기 자신의 피부에 닿는 문제로 여기게 되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이 우주에 있는 아주 작은 생명체 하나하나와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사랑 넘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한아 같이 다정한 지구인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질량과 질감이 다르더라도 너무 소중한 관계들이 넘쳐나는 그런 세계를 꿈꾸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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