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선 Jan 23. 2023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를 보고

연말에 동료들과 2주에 한 번 영화 한 편, 책 한 권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다른 모임에서도 몇 번씩 추천하며 반복해 읽고 있는 '평화를 보는 눈'이 제비 뽑기에 운 좋게 뽑혀, 평화라는 키워드로 시작할 수 있어 한층 뜻깊었습니다. 두 번째 제비 뽑기에서는 막내가 고른 사랑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가 뽑혔는데, 사랑 영화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 이 영화를 보고 가벼운 감상부터 시작해서 좀 불만이었던 점들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니 볼 예정이 있으신 분들은 제 글은 나중에 읽어주세요~!


영화를 보기 전, 시놉시스를 얼핏 보고 말았는데 이미 큰 가닥이 담겨 있었습니다. 소설을 쓰는 청년 로렌스가 여자가 되고 싶다고 그의 피앙세에게 고백을 하지만, 그 둘은 서로 사랑을 놓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시놉시스를 읽지 않고 영화를 함께 감상하던 가족들의 반응을 봐서는, 나름대로 충격적인 전개였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의 연출과 전개가 워낙 난해하다 보니 처음으로 시놉시스를 미리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로렌스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저는 제가 갖고 있던  사전 정보 때문에 저는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 성전환을 위한 상담이리라 지레짐작하고 이 대화를 들었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정신과 의사라 보기에는 참 쓸데없는 것을 많이 물어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저는 편견을 가지고 영화를 보고 있었기에 첫인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로서 성공한 로렌스가 인터뷰하는 장면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성소수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하다는 듯 모든 가능성을 없애버리고 치료 목적의 상담 만을 선택지에 남겨놓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영화를 보셨을 다른 분들은 이 내레이션을 어떻게 상상하며 들었을지도 궁금해집니다.


아무튼 이런 내레이션과 함께 한껏 행복에 들뜬 로렌스와 프레드가 등장합니다. 이 영화에서 세 차례 사랑을 상징하며 나타나는 우수수 쏟아지는 빨래와 함께요. 시작 부분에서 로렌스가 프레드에게 쏟아부으며 한 번, 프레드가 아들에게 쏟아부으며 한 번, 잠시 블랙섬으로 사랑의 도피를 떠난 로렌스와 프레드에게 하늘에서 알록달록 색색의 빨래가 꽃처럼 내리며 한 번 등장합니다. 인도 영화 등에서 흔히 묘사하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꽃잎이 휘날리는 것을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도구로 연출해 낸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로렌스와 그의 연인(영화 중에서는 프레드가 로렌스를 남편으로 지칭하기도 합니다만) 프레드에게 색깔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서로 한창 행복하던 영화 초반부에서 각각의 색깔에 의미를 부여하며 놀기도 하고요. 빨강은 분노, 노랑은 비대한 자아, 이런 식으로요. 두 주인공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이 화면을 담아낼 때에도 전체적인 배경과 주인공들의 옷 색깔을 통일시키거나 컬러 조명을 세게 비추며 색을 통해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린 프레드에게 다시 찾아갔을 때 다시 불타오르게 되는 것도 하얀 벽돌집 틈에 사랑을 의미하는 분홍색을 딱 한 칸 칠해놓고 서로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애정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이런 '색'에 대한 표현을 보다 보면 사랑에 빠져 가장 행복한 순간에 알록달록한 빨래가 날아다니는 것은 어쩌면 가장 많은 감정으로 꽉 차 있는 상태라는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사랑에 예쁜 색만 수반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렇기에 현실의 무게를 같이 견뎌야 합니다. 사촌들과 함께 놀 때 물속에서 오랫동안 버티다가 가장 늦게 물 밖으로 나왔다는 로렌스의 독백처럼, 로렌스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사실로부터 오랫동안 도망치고 숨어왔지만, 더 이상 그러기 힘든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여자가 되어 진짜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하는 로렌스에게 프레드는 그럼 그동안 자신과의 삶과 사랑은 가짜였냐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지만, 이내 무지개색 슈트를 입은 채 등장합니다. 고통만이 아니라 로렌스가 가엾고, 사랑스러움 등의 온갖 감정이 그녀의 속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도 그녀는 쉽게 사랑을 놓지 못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은 뒤에도 아이보다도 너를 더 사랑한다면서 로렌스에게 화를 냅니다(이 대사는 프랑스 영화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나왔다면 무섭게 욕을 먹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인들의 반응은 이들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프레드의 여동생은 '언니는 남자를 좋아하는데 뭘 고민하냐, 바로 헤어져라.'라고 깔끔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이미 로렌스를 사랑하고 있는 프레드는 로렌스의 고난길을 함께 걸어갈 생각까지 합니다. 굉장히 자기희생적인 사랑이죠. 직접 로렌스에게 씌울 가발도 고르고, 화장하는 법도 가르치고, 학교에 화장을 하고 여자 옷을 입고 출근하는 것을 응원까지 해줍니다. 이렇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로렌스는 귀걸이를 한쪽에만 차고 나오며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생겼던 아이를 지우고 우울증에 걸린 데다 실직한 프레드와 학부모회의 비난으로 인해 역시 실직하게 된 로렌스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그날 헤어지게 됩니다. 헤어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하러 간 식당에서 온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시달리던 두 사람에게 식당 주인은 다가와서 질문을 던집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요? 취미인가요? 결국 폭발한 프레드는 소리를 지릅니다. 토요일 아침부터 왜 이렇게 화를 내서 분위기를 망치냐는 질문을 적반하장으로 당하는데도 굴하지 않고, 그 입 닥치라고, 네가 남편을 위해 가발을 사는 심정을 아는지, 아니면 남편이 저런 꼴을 하고 다니다가 맞고 올 까봐 얼마나 걱정이 되는지 네가 알기나 하냐고 소리를 지르지요. 결국 자기 속마음을 다 드러낸 프레드는 한번 로렌스를 떠나 멀쩡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이 장면은 개개인의 사랑이 현 사회를 뒤집어엎을 수도, 그렇다고 그 안에서 소수자가 적응하고 살게 도울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듯했습니다. 프레드와 같은 '소수자의 편'에 서려는 사람들에게도, 소수자들에게도 너무나 가혹한 세상입니다. 무시당하거나(시선을 아예 맞추지 않음), 호기심의 대상이 되거나 (노골적인 시선으로 훑어봄), 물리적/언어적 폭력에 노출되거나, 아니면 이런 류의 폭력을 멈추도록 요구했을 때 예민하게 군다고 공격당하기도 합니다. 단 한순간도 '남들과 다른' 소수자로서의 삶을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프레드에게 이 모든 것들은 너무 가혹했고, 결국 로렌스에 대한 사랑과는 별개로 헤어짐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들이지요.


로렌스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평안과 정체성을 찾는데 도움을 받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바뀌었어도 여성을 사랑하는 것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샤를로트라는 여성과 연애를 하며 프레드의 주변을 맴돕니다. 안 그래도 소수자인 트랜스젠더에,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성적지향을 갖고 있는 로렌스는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입니다. 함께 영화를 본 직장동료들은 이런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평을 할 정도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사회는 소수자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해의 첫 단추인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서로 알아가는 단계조차 밟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수자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고통스러운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던 점은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점들도 눈에 많이 띄는 영화였습니다.


첫째,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구분해서 묘사할 정도의 섬세한 감각을 갖고 있는 감독이, 자신의 성별에 불편감을 갖고 있는 남자를 그려내는 방식이 너무 구식이었습니다.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나오는 모습들은 '화장을 하고 여자 옷을 입는 것'인데, 화장/치마/구두/가발/액세서리=여성이라는 공식이라니요. 2012년 영화임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촌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혹시 위와 같은 행동들을 자유롭게 해도 괜찮기 때문에 오직 그 이유만으로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가 있다면 그건 여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닌 미를 추구하는 행동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남성이 미를 추구하는 것을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 자체로 타파 대상이지,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은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정말 하나도 고려해보지 않은 결과물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둘째, 첫 번째와 이어지는데 여성으로서 삶에 대해서 정말 하나도 고민해보지 않는 게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로렌스가 제 나이 절반 도 안될 십 대 꼬맹이의 캣콜링에 수줍어하는 장면이나,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신나서 좋아하는 장면은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마냥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여성은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 되고 싶을 거라는 생각은, 남성의 입장에서 그냥 가벼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로렌스와 프레드가 싸우는 장면에서 로렌스는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데요. 물론 물리적 폭력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자기보다 훨씬 작고 연약한 여자를 상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당연히 따라와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이기적인 태도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화를 내는 태도며 모든 것이 소수자로서 보다는 '남성'이라는 기득권으로서 작동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걸 감독이 의도한 거라면 참 잘 잡아낸 장면이겠지만, 사실 영화 전반적으로 로렌스가 얼마나 가여운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런 맥락보다는 이 행동이 얼마나 기득권으로서 작동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실수로 담긴 장면 같았습니다.


세 번째, 사랑한다면서 화를 낸다고요? 물론 영화에서 말하는 기조인, 사랑에는 다양한 색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는 강력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방식은 사회적으로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것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그 생각, 그렇게 되지 않는 것에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상대방이 나를 봐주기를 기다리면서 주변을 맴돌며 스토킹을 하는 행위 등. 정말 사랑일까요? 저는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지 상대에 대한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행위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너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변명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이런 미디어조차도 다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따로 상담에 대한 스터디를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는데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애티튜드다.' 저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감정에 취해서 하는 행동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든 상대에게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칭 사랑 영화라는 '로렌스 애니웨이'에 대한 감상평 한 줄 요약은 '내가 보기에 로렌스가 한 건 사랑이 아니었다.' 정도 되겠습니다. 오히려 프레드의 사랑이 내 아이보다 너를 더 사랑한다는 절절한 고백으로도,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내 연인을 위해 가발을 사고 여장을 돕는 그 자기희생적인 사랑이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 프레드 같은 사랑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뜯어말릴 것 같습니다. 그 남자가 하고 있는 건 사랑이 아니야. 자기 입맛대로 주무를 사람이 필요한 거지.

매거진의 이전글 내게 무해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