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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Jan 09. 2023

내게 무해한 이야기

정세랑 단편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고

 대학에 들어와 나름 지식인이 되어보겠다고 폼을 잡으려 책 읽는 척을 하다가 병을 얻었습니다. 이름하여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이야기를 보고 듣고 읽지 못하는 병'입니다. 살면서 불편한 게 이렇게 많아질 수 있다니 상상도 못 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쓰는 순간에도 이 표현이 진짜 병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어쨌든 편의상 계속 병으로 지칭할 만한 제 변화 때문에 그간 숱하게 많은 작품을 초입부터 덮어버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 왔던 수많은 영화, 애니메이션, 고전문학, 장르소설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어버리고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영화들을 사랑해 왔다'는 셀린 시아마의 말처럼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기 위해 나를 부정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할 때마다 부끄럽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으며 그런 고통이 전혀 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이 너무 인상 깊었기 때문입니다.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11분의 1', '리셋', '모조 지구 혁명기', '리틀 베이비블루 필', '목소리를 드릴게요', '7교시',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총 8개의 작품이 실린 이 단편집을 읽고 감상문을 남겨놔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키워드는 '무해함'이었습니다.


일단 '리틀 베이비블루 필'을 제외하고는 모든 작품은 사랑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한 사람, 혹은 동물, 환경, 세상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에서 주인공들을 움직이는 원동력 역시도 그 사랑들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돕고, 살리고,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주인공들은 이해하기 쉬운 행동들을 선택합니다. 작가 자신이 조금 건조하게 썼다고 말하는 '리틀 베이비블루 필'도 치매에 걸린 조부모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태어난 약으로 인해 생겨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랑들이 폭력적이지 않다는 것이 아주 좋았습니다.


아주 지극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표현 방식들은 어떤가요?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아파하고 울고, 소리 지르고 화내고, 아주 온갖 감정이 올라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모든 것을 터뜨리듯 표현하는 그런 묘사가 많지 않나요? 저는 바로 이 작품을 읽기 직전에 본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에서 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들을 떠올리며 정세랑 작가가 표현하는 사랑이야 말로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가깝다는 생각을 조금 했습니다. 상대방을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을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요. 저는 개인적으로 사랑에 대한 그 모든 정신 나가고 공격적인 묘사들이 지금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르는 폭력을 정당화하는데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이야기는 '로렌스 애니웨이'에 대해서 글을 쓰며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거기에 더해 작가의 세계관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세상에 대한 애정에도 공감하기 쉬웠습니다. 지금 이 폭력적인 문명이 어떻게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지, 이를 막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위기의식을 드러내는 지점들이 좋았습니다. 결국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미래에서 과거로 '지렁이'를 보내 문명을 파괴하고 되살리는 '리셋'을 보면서는 같은 주제를 갖고 있는 영화인 '테넷'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먼 미래에서 지구를 위해 움직이는 그들의 행동 원리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불태우고 터뜨려버리는 테넷과는 달리, 연약한 생명체인 지렁이를 등장시켜서 모든 것을 먹고 다시 풍요로운 흙으로 돌려놓는 모습은 얼마든지 평화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상상력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었습니다.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그 방법도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평화학의 기치가 떠올랐지요.


요즘 SF작가들 중에서도 여성 작가들이 거의 중심이 되어 흘러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폭력적인 이야기에 지쳐버린 저 같은 사람들이 이런 편안함을 주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따라다니며 생겨난 현상일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내게 해롭지 않은 이야기를 더 많이 보고 듣고 읽게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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