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한일청년평화포럼 참가 3일 차, 8월 31일 목요일에는 오전, 오후를 이어서 그룹별로 필드워크를 진행했습니다. 사전에 1순위, 2순위로 나누어서 신청을 받았었는데요. 저는 최근 군 문제에 관심이 늘어나서, 그룹별 필드워크 신청에 노보리토 연구소와 요코스카 기지를 넣었습니다. 둘 중에 어느 쪽이 1순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요코스카로 가게 되어서 약간 신이 나있었습니다. 소속단체, 피스모모의 활동과 연계시킬만한 부분을 찾기 쉬울 것 같았 거든요. 멀미를 좀 해서, 배를 타야 한다는 것 때문에 약간 걱정이 있기도 했지요. (다행히 당일날 일본 측 참가자 한 분이 사탕형 멀미약을 챙겨주셔서 좀 편하게 다녔습니다.)
요코스카 팀의 경우, 다른 필드워크 그룹들에 비해서 갈아타야 할 교통편도 많고 거리가 멀다며 담당 스태프들이 출발 전날 저녁 식사 내내 엄청 고민이 많았습니다. 거리가 있다 보니 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었고, 최대한 덜 걷는 쪽을 고민하여 길을 짜내는 과정이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덕분에 길도 헤매지 않고 편안히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다들 고마워요!)
요코스카 기지는 재일 미국 해군 사령부가 있는 미군시설입니다. 1871년 요코스카 조선소가 설립되었고, 일제 시기에는 일본군 해군에게, 45년 이후에는 미군 해군에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요코스카의 주요 시설 및 공장이 반환받아야 하는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도착하자마자 보트에 타서 요코스카 항구의 모습을 한 시간에 걸쳐서 둘러보았습니다. 산 밑을 뚫어 탄약을 보관 중인 콘크리트 시설들과 적재하기 편하게 조립된(?) 탄약들, 순양함과 기뢰를 추적/파괴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커다란 배들을 사이로 요리조리 바다를 누볐습니다. 새 부두를 건설 중인 현장도 지나가게 되었는데요, 사실 미군이 남의 땅을 멋대로 이용하고 있는 거야 처음 본 일이 아닌데도, 이게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폭력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캠프 데이비드 정신이니 뭐니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소리를 했었지요. 필리핀, 대만, 한국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전쟁 대비용 방어선"을 자기네 땅에서 한참 멀리 떨어지는 곳에다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 중인 모습이 좀 괘씸했습니다.
보트를 직접 운항하시며 설명을 해주시는 선장님은 제법 열정적이셨습니다. 각각의 배와 장비들에 대해서, 또 어느 장소엔 자위대와 미군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얼마나 위협적인 무기 들인 지에 대해서 설명을 상세하게 해 주셨지요. 저는 사실 이 부분에서 조금 위화감이 있었습니다. 꼭 무기 설명회라도 온 것 같았거든요.
제가 이전에 활동했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에서 진행하던 캠프에는 한일/평화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가지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역사가 좋아서 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전쟁과 군사무기에 매료되어 있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일종의 게임과도 같이 '강한 것'에 매료되어서 보이는 현상 같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아이들에게 전쟁이 아닌 평화의 프리즘으로 역사와 세상을 읽도록 돕기가 쉽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캠프를 준비하면서 아무리 섬세하게 준비를 해도, 결국 전쟁기념관 등의 의도는 평화가 아니다 보니 평화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전시자의 의도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 제 맥락 속에서, 지금 설명해 주시는 분에 대한 자기소개를 잘 듣지 못한 상태다 보니 저는 고민이 좀 되었습니다. 이분이 요코스카 미군기지 반대활동을 하시는 분이실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관광객들 대상으로 이런 것들을 가이드해주시는 분인 걸까? 사실 어느 쪽이든, 무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다른 내용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요. 이왕이면 무기의 스펙보다는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 시설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런 이야기를 좀 더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이 위화감에 대해서 오키나와 미군기지 관련 운동을 하는 분과 잠깐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요. 미군기지 관련 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저 무기 때문에 내 삶이 어떻게 파괴될지에 대한 걱정이 크기 때문에 무기의 스펙에 대해서도 다들 상세하게 아시는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이런 무기들의 위협이 너무 두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세히 알아놓아야 대응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상세히 조사 중입니다."같은 문장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제가 느낀 무기전시회장에 놀러 온 거 같은 불편감이 좀 덜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항구를 다 돌아본 뒤에는 요코스카의 주요 거리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키나와에도 종종 출장을 가보고, 또 최근에는 동두천/평택 등을 필드워크로 다녀온 저에게는 요코스카의 거리 풍경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요코스카의 특색이 더해진 스카잔 정도만 빼면 군사문화를 관광상품으로 소비하고 있는 풍경도, 미군들에 의해/미군을 위해 지어진 온갖 이국적인 가게들도 딱 미군 기지 근처의 모습 같았습니다. 예전에는 조선소가 있어 경제적으로 부흥했었던 도시라는데, 그 요충지를 전부 미군이 차지해 버린 지금은 '미군'이라는 요소가 마을 경제에 필수불가결하게 되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함께 필드워크에 참여한 기지촌 여성 연구를 전공했던 분은, 길을 걸으며 당시 여성들이 일하고 있었을 만한 장소들을 집어내기도 했습니다. 답사 이후에 있었던 반기지 운동 소개 후에 이 분이 해당 여성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활동가들에게 질문했을 때에는, 아무도 그들의 행방을 모른다는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좀 여러 가지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왔습니다. 국가라는 주체들에 의해서 폭력에 휘둘렸던 약자들에게는 그 사이에도 이른바 순위가 있어서,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약한 존재일수록 더 쉽게 잊히고 맙니다. 글쎄요, 갈등을 해결해 나가기 위한 과정 자체가 평화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답답한 일이긴 했습니다.
어쨌든 기지 근처를 돌아보고, 미군의 영향력 하에 있는 거리를 돌아본 뒤에는 미카사교회에서 점심을 먹은 뒤 지역운동가 니이쿠라 히로시 씨, 고토 마사히코 씨에게서 일본의 군사증강과 요코스카 기지의 관계, 요코스카의 반전/반기지 운동에 대해서 소개를 들었습니다. (사실 하루종일 햇빛을 쬐며 답사를 끝내고 온 뒤라, 지쳐서 꾸벅꾸벅 졸다 보니 이분들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다음에 혹시 답사를 기획한다면 순서를 반대로 해주시면 더 좋지 않을까요? 흑흑)
먼저 일본의 군사 증강과 요코스카 기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19년도 5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은 "요코스카는 미 해군과 동맹국의 함대가 나란히 사령부를 둔 세계에서 유일한 항구다"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실제로 답사 때 자위대와 미군시설이 나란히 있는 것을 보고 왔기 때문에, 요코스카의 군사적인 위치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로 치면 미군에게 국군이 하위 조직 같은 인상을 주는 배치인데, 일본의 위상은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오키나와 미군기지 구성은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일본 내에서도 차별적 위치에 놓여있는 오키나와의 경우는 한국군과 비슷한 위치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분명히 법적으로 '군대'가 없는 일본일 텐데, 걸프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각각 가장 많이, 또는 선제공격으로 토마호크를 발사한 것은 요코스카의 모항의 '파이프'와 '카우펜스'라고 합니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배부된 참고자료를 근거로 하여, 군사무기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이 작성 중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군사비는 세계 9위인 541억을 지출 중입니다. 세계 군사력 랭킹 2021에는 5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유사시 즉각적인 대응을 위한 무기 장비들과 부두시설들이 요코스카에 어마어마하게 설치가 되었고, 최근까지도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1960년대에는 원폭투하 반대운동과 요코스카에서의 시위가 있었고, 이후에도 반토마호크, 핵탑재함기항 반대운동, 해외로의 공격적 군사행동에 대한 항의 활동 등을 계속해왔다고 합니다. 정권에 따라 요코야마 시장이 함께 반전, 반기지 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군기지와 고령화/고립되고 있는 반전/반기지 운동을 어떻게 계승/확대해 나갈 것인지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고 합니다.
대안으로 평화/긴장완화의 메시지를 내기 위해 1) 다양한 시민단체에 의한 중층적인 운동, 2) 여성이나 청년층이 참가하는 운동, 3) 다른 분야의 시민운동/자치실천과 연계, 4) 국제적 연대에 대한 고려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후 아주 유익한 질의응답이 많이 이뤄졌는데, 저는 제가 나눴던 이야기를 위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먼저 1번 목표와 3번 목표를 한데 묶어, 다양한 시민단체로의 확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피스모모에서는 7월에 COMPSA(커먼즈: 모두의 것으로서의 평화와 안보)라는 콘퍼런스를 진행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평화를 위해 얼마나 다양한 이들이 손을 잡을 수 있는지 배우게 된 것이 정말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군수산업과 군사활동이 내뿜는 탄소배출량이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6%를 차지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당시 발표 자료가 제게 없어서 참여연대 글을 참고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주로 하고 있는 환경운동가들에게도 반전문제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실을 활용한 담론을 만들어 환경운동가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군문화와 전쟁으로 인한 폭력으로부터 젠더문제, 비인간존재들에 대한 관심을 군사문제로 확장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평화권등의 방식으로 인권 문제 활동가들의 지지를 더 얻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성이나 청년이 참가하는 운동에 대해서는, 일본 운동계 전체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제가 참여한 2023 한일청년평화포럼에서 조차도 상대적으로 연령이 위인 실행위원회 분들이 짜놓은 판에 청년들이 가서 배우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세대가 다른 이들 간에 일방적으로 전수라는 형식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운동 방식은 아무래도 우리 세대에는 맞지 않는 느낌이 강합니다. 게다가 여성이든 청년이든 '마이너리티'로서의 우리의 존재가 그들의 운동 방식에 풍요로움을 덧대는 '쿼터제' 같은 방식으로 호명되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도 않습니다. '여기 일부에 너희 자리도 있으니 들어오라'는 외침 대신, '어떻게 하면 함께 해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기획 단계에서부터 마이너리티가 포함되지 않는 이상, 모두의 협력을 얻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국제적 연대에 관한 것입니다. 서방과 동방 블록의 대결이 표면화되는 가운데 세계의 군사적 긴장이 심각한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군비경쟁이 과밀화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무력 충돌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증가하는 군사비 지출, 무기 거래, 군사 훈련, 군사 동맹은 사실상 모두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전쟁 준비입니다.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안보 관련 의사결정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따라서 피스모모에서는 동북아시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전쟁 반대 목소리를 내는 조기경보가 필요하다고 판단, 조기경보의 목소리를 모아낼 수 있는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대부분 고령이라 외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요코스카 분들을 위하여, 조기경보 등의 자료를 부족한 실력이나마 일본어로 번역하여 공유하겠다고 약속하며 모임을 마쳤습니다.
2023 한일청년평화포럼에 참가한 친구들과 함께, 선배님들이 해 온 운동이 잊히지 않도록, 또 더욱 발전하여 결국에는 평화를 이루어내는 날이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