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선 Sep 08. 2023

우리 말고 모두 함께

「커먼즈: 모두의 것으로서의 평화와 안보」 콘퍼런스 참가후기

2023년 7월 25일, 피스모모에서는 「커먼즈: 모두의 것으로서의 평화와 안보(COMmons: Peace and Security for All)」콘퍼런스가 열렸다.(이하 COMPSA) 피스모모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대규모 국제행사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실무자'로서만이 아닌 '함께 담론을 만들어갈 동료'로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들어달라는 주문을 받고 참가한 콘퍼런스이기도 했다. 그 다정한 말이 얼마나 설레던지.


콘퍼런스의 시작과 동시에, 이번 콘퍼런스를 어떤 관점에서 들으면 좋을지 중심을 잡아준 것은 정영신 선생님의 "커먼즈의 정치와 평화: 커먼즈로서의 평화는 가능한가?"였다. 이전에 내가 갖고 있던 평화에 대한 맥락이 얕고 좁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만큼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온 내용이 많았다.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내용 중심으로 메모를 남겨둘 생각이다. 언젠가 피스모모에서 COMPSA자료집을 공개할 날이 올지 어떨지... 나는 모른다ㅎㅎ)


안보와 평화에 대한 그 구분이 첫 번째였다. 안보란 "타자를 전제하지만, 안보의 성립은 고립적 또는 독단적"이다. 또한 공공재로서 "국가가 공급하고 시민이 소비재로써 향유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평화를 이해하는 방식은 이와 구분 지어야만, 우리가 직접 커머닝(commoning, 다 함께 기여하는 것)을 통해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영신 선생님께서는 본질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역사적/구성주의적 접근을 통해 평화라는 개념이 맥락에 따라 바뀔 수 있음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해 주셨다.


또 평화에 대한 정의뿐 아니라 공동자원, 공동재 등으로 번역되곤 하는 커먼즈에 대한 정의를 찬찬히 돌아봐 주는 것을 통해서 같은 초짜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기여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이게 정리해 주셨다. 거칠게 요약을 하자면 우리의 것/모두의 것으로 나뉘는 커먼즈의 두 가지 성격에서, 평화를 우리의 것에서 모두의 것으로 확장해야만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악한 예지만, 적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있는 '안보'라는 개념에서, 우리나라▷동북아시아▷인류전체▷생물전체와 같이 점차 '모두'를 평화롭게 하는 개념으로 넘어가자는 말씀이라고 이해했다. 우리라는 경계 설정은 필연적으로 배제와 독점을 불러온다. 하지만 선생님이 설명해 주신 것처럼 '모두'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개방성에는 비협력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평화를 모두의 것으로 확장하자는 정영신 선생님의 발표에 바로 이어서 피스모모평화페미니즘연구소의 심아정 선생님께서 전쟁에서 희생되는 비국민/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발표를 해주셨다. 난민, 러시아 전쟁에서 강제로 동원당하고 있는 죄수들, 전쟁에서 동원되곤 하는 말과 개와 같은 비인간 존재들, 전쟁으로 '부수적 피해'로 인한 환경 파괴와 생태학살. 요즘 기후위기에 대한 위기의식이 전 세계적으로 강해지고 있는데, 여기서 군사활동/전쟁/축산업 등은 얼마나 고려되고 있는가? 진정한 평화를 만들어가고 싶다면 비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확장이 필요하고, 어떤 논의가 필요할지 질문을 던져 주는 발표였다.


내가 여기까지 배운 안보와 평화라는 개념에 대해 집에 와서 짝꿍에게 이야기를 하니, 바로 비현실적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영신 선생님이 말씀하신 '모두'의 평화가 가진 한계인 비협력의 이야기와도 닿아있는 부분이다. 짝꿍과 부딪힐 때마다 바로 백여 년 전만 해도 신분제가 없는 사회는 상상조차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튀어나왔듯이, 당장 실현은 불가능할지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러한 맥락을 현실적으로 가져오기 위해, 오전 시간 세 번째 발표는 김준형 선생님께서 진행해 주셨다. 동북아의 현재 상황과,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전세계적으로 세계화가 아닌 파편화/민족주의적인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냉전이 부활하는 듯한 국제정치의 흐름 역시 심상치가 않다. 냉전시대의 전략적 완충지대로서 한반도가 분단되었다면, 이 새로운 흐름 속에서 전쟁의 장소가 되는 것 또한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계속해서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와 똑 닮은 전략을 취하고 있는 지금의 정부가 이에 호응하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북한학계에서 사용되는 트릴레마라는 개념을 잠깐 설명해 주셨는데, 한미동맹, 비핵화, 남북협력이 두 개까진 몰라도 어떻게 해도 세 개가 다 동시에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의 꽃은 평화(다른 맥락이지만 정치의 꽃은 복지라는 정말 마음에 드는 말씀도)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평화(안보)를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벗어나서,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시민사회가 강한 미국이나, 국가의 권위만 강한 중국과 달리 국가도 강하지만 시민사회 역시 강한 한국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이 부분도 정말 공감이 많이 갔다. 정권을 바꿀 수도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강력한 시민사회는 흔치 않다. 그렇다면 평화를 위해서도 우리 시민들이 힘을 합쳐서 뭔가 이뤄 낼 수 있지 않을까?


위 세 가지 발표 이후, 피스모모의 영철, 뭉치, 엘림, 가연이 각각 교육, 기후위기, 젠더,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평화커먼즈의 실천적 확장을 위한 토론을 진행해 주셨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도 사실은 구성원들 간 인권을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대신 함께 커머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 정말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교사분들이 여럿 돌아가시고 있는 현 상황에 너무 소중한 말이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서 사회가 다 같이 고민해야 할 상황인 만큼, 모두와 이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또 친환경 전쟁이라는 말이 없듯, 기후위기로부터 군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평화권에 대해서 이경주 인하대학교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당일날에는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TEPI 7월 세미나에서 말씀해 주셨던 "피해받지 않을 권리만큼이나 가해하지 않을 권리" 역시도 평화권이라는 이야기가 너무 인상 깊었다.


사실 현실적으로 현재의 평화/안보의 상황에 대해서 국내, 국제정치 상호작용의 맥락에서 설명해 주셨던 오후의 세션들은 내가 이해하기엔 아직 조금 벅찼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 이해할 수 있는 날이, 그리고  언어로 이걸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활동가로서 처음 발을 내디뎠던 해, 교수인 큰 외삼촌이 굉장히 집요하고 짜증스럽게 "그래서 네가 그 분야에서 뭘 할 수 있는데? 발전 가능성이 없잖아."라고 물었던 것이 떠올랐다. 실제로도 한일역사 문제 관련 활동에 있어서, 전공이 전혀 다른 데다 박사과정까지 하지 않은 나에게는 마이크가 주어지지 않음을 여러 차례 느꼈다. 대부분 교사/학자인 그 판에서 삼촌이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시각으로 활동가를 보고 있고 기회를 주지 않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네 자리를 만들어가야지, 누가 만들어주겠니?"라는 말에 스스로의 무력감과 오래도록 싸워야 했었다.


물론, 평화라는 이쪽 분야 역시도 지난한 공부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일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커머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그 자체가 평화로 향하는 길이며 그것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서로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피스모모의 다정한 신념 덕분에 나도 내 미래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함께 담론을 만들어가는 동료로서" 콘퍼런스를 듣도록 권유하며, 실무에서는 조금 빈 공간이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던 아영 덕분에, 그리고 긴장하면서도 당당히 나서서 말해준 나의 수많은 동료 활동가들 덕분에, 우리의 초대에 응해 함께 커머닝하기 위해 모여주신 여러 학자분들 덕분에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콘퍼런스였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도 이 벅찬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나눈다. 평화란 멀리에 있지 않다. 나는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당장 버릴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함께 공부하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같이 알아가고 싶다. 가까운 미래에는 평화 담론의 스피커가 되어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또 언젠가는 '모두의 평화'가 도래해 있는 미래를 상상하며 글을 마친다.

(2024.5.15. 일부 수정)

이전 03화 가해하지 않을 권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