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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Sep 17. 2023

동북아에서의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생각하다

여성인권과 평화 아시아청년포럼 참가 후기

2023년 9월 17일 오후 1시 반부터 온라인으로 여성인권과 평화 아시아청년포럼의 워크숍에 짧게 참가했다.


시작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재까지 겪고 있는 문제들을 그려낸 A Nigthtmare That follows (Ethan Cheng, ALPHA에듀케이션, *소개 시 메모를 하다가 놓쳐서 제목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짧은 영상과 함께 했다. 성폭력 피해는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한번 찍어진 낙인은 가족관계, 사회적 관계 모든 것을 손상시킨다는 것을 드러낸 영상이었다.

사회자인 심아정 선생님께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워낙 무겁다 보니) 그 무거움에 압도당하지 않을 때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 인상 깊었다.


기성세대:청년 = 가르치는 자:가르침 받는 자?

남해의 평화의 소녀상과 숙이나래 문화제  (송해리, 경상국립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


지역 정부차원에서 탑다운 방식으로 개입하여 만든 남해 숙이공원(평화의 소녀상)과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낸 숙이나래 문화제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아무래도 영어로 발표를 진행하고, 동시통역으로 내용을 듣다 보니 내용 전체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지역의 문화적 기억 전달을 위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여 주셨다. 이는 피스모모에서 이야기하는 커머닝과도 닿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정부에 대한 저항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문화적, 역사 기억을 어떻게 남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에 대하여 청소년, 청년, 예술가 등이 직접 연결되어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문화예술적 페다고지를 중요시 여기고 있고, 실제로 개개인이 직접 참여를 하는 커머닝을 통해서 평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피스모모와 과정과 방식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역사적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과 연대를 하여 이들의 기억에 귀를 기울이며 기억을 이어나가는 것을 통해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겠지.

 이 발표에 대해 김명희 경상국립대학교 교수님께서 코멘트를 남겨주셨다. 사실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마치 지도교수로서 논문에 대한 심사를 해주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당황해 있었다. 사실 '아시아청년포럼'에 참여하게 된 것은 웹자보에서 '청년'이라는 키워드를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흥미를 가진 건 청년들이 주역이 되어 네트워킹을 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젊은 연구진이 발표를 하고 교수님들이 이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시는 구성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하지만, 코멘트에서 가르치는 자 - 가르침 받는 자의 구도가 드러나는 순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피스모모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라는 개념과는 좀 거리가 있으니까.

 (아예 2부를 시작할 때에는 멘티와 멘토라는 단어로 발표자와 토론자를 소개하셨기 때문에 내가 느꼈던 당혹감을 조금 지울 수 있었다. 처음부터 세팅이 그렇게 되었던 거라면 내가 생각했던 '청년'포럼은 아니었던 거겠지. 사실 이 타이밍에서 의욕을 잃고 2부 발표는 듬성듬성 듣게 되긴 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청년포럼'에 맞춰 청년들의 역할에 대해서 더 파고든 발표였다면, 또 청년들의 활동 자체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셨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폭력과 트라우마의 굴레: 전쟁에서 가정폭력으로

Moving Forward in Addressing The Historical Trauma: The Case of Nanjing (난징대학교 deting lu)

 

 난징대학살에 대해서는 80년대 중국에서 애국 교육을 시작하며 중일 전쟁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며, 82년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난징대학살 기념관 등도 개장하고, 기념비도 설립하며 그때의 일에 대해 기억을 남기고, 미디어 등을 통해서도 교육을 진행하여 우리(중국인들)가 모두 피해자라는 집단 무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상태, 즉 국가적/역사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일본의 참전 용사들에 대한 예시를 들었다. 그들이 갖게 된 자신들이 이런 행위에 참여했다는 심리적 트라우마로 인해 그들도 악몽을 꾼다고 한다. 프로그램 시작 전 보았던 영상에서도 나왔었지만, 이 트라우마를 가진 자들은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여 또 다른 피해자를 낳게 된다. 굳이 참전용사로 좁히지 않더라도 일본대중 같은 경우에도 전쟁에 상흔이 남아있어, 이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 피하게 된 상태이다.

 이 트라우마는 개인이 커뮤니티에서도, 자신의 가정에서도 제대로 관계를 유지 못 하게 만든다. 이것은 커뮤니티 간의 소통에도 이어져, 국가 간의 관계 레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평화와 갈등연구에서 트라우마가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트라우마는 적개심으로, 이는 또 물리적 행동과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발생한 분쟁과 갈등은 다시 구성원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게 된다. 따라서 이 갈등을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트라우마의 굴레를 끊을 수 없다.

 

 1. Remembering Nanjing Program

 그래서 이 역사적인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예술기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리츠메이칸 대학교 난징 보통대학(Nanjing Normal University)에서 조직하여 중일의 대학생, 교사, 학자나 역사학자, 활동가등의 전쟁 이후의 세대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2009년, 2011년, 2013년에 3번 진행이 되었다고 한다.

 트라우마 관련 스토리를 재연하고, 참여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표현하도록 유도하며 역사적인 트라우마 해소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다만 중일의 청년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일본의 사과에만 집중을 하는데에 한계가 있다.


2.Revisiting Nanjing

 그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동일한 참가자를 대상으로 하여 여름방학 때 난징과 히로시마 등의 도시를 오가며 진행한다고 한다. 역사 트라우마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먼저 배우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과 중국 참가자들이 관계를 쌓아갈 수 있게 하여 중국과 일본의 화해를 모색하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한다. 서로 간 역사적 내러티브를 개발하고, 강연으로 역사적 사실을 배우고, 전시회를 열고, 서로 함께, 그리고 피해자와 함께 슬퍼하고 감정 공유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연극이나 명상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워크숍 이후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관계를 쌓아가며 프로세스로서의 트라우마의 치유를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해 주셨다.


 발표 이후의 코멘트에서 수차례 "역사적 트라우마가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굴레에 대한 발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카토 케이키 히토쓰바시대학교 교수님의 말씀대로 이는 일본의 폭력적 남성성의 발현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국가레벨의 폭력이 일상에 스며드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한 것 같다. 사실 좋은 교육을 받고, 자신의 감정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폭력과 혐오를 휘두를 확률은 낮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인 '국가적 차원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개인에게 폭력의 책임을 전부 지울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서서 폭력을 낳고 있는 구조를 손봐야 하는 절실한 이유기도 하다. 


역사적 문제에서 현재의 문제로

일본 내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현안과 쟁점 (구마노 고에이, 히토쓰바시 대학교 대학원생)


 먼저 일본의 역사적인 맥락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간단히 메모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고노담화/무라야마담화 : 도의적 책임은 인정했으나 법적책임도 지지 않고 보상도 하지 않음.

1997 학교 교육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제외. 일본회의 우파그룹 역사수정주의 대두. 

2006 일본군'위안부'라는 설명 자체가 교육에서 삭제됨.

2007 일본군'위안부'가 강제로 갔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함.

2015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한국에 설치한 재단에 10억을 보상한 것으로 정말 합의했다고 간주함.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고, 희생자들의 의지 입장 반영이 되지 않으며, 또한 다른 나라 피해자들의 의견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음.


한국 측의 맥락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일본만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한국 정부도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의 반공이데올로기, 수요집회에 대한 공격, 일본우파와 연대 강화, 일제강점기 정당화 등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정권은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일본이) 무릎을 꿇을 필요 없다며 피해자들의 존재와 역사적 사실을 묵살해 버리면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표방 중이다. 1965년 정권으로 회귀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죠.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1. 정치적 이유 : 1965 한일기본조약으로 시작한 한일관계, 한미일 간의 합의, 삼각군사협력등이 역사문제가 대두되지 않도록 억압하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 중국, 북한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서 한미일 군사안보가 강조되며 더더욱 그러하다. 내부적으로는 역사수정주의를 표방하는 우파가 정권을 쥐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2. 교육적 이유 : 이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교육에도 문제가 되고 있다. 2006년 일본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역사교과서에서 정말 제외한 이후 전혀 언급이 되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내 의견을 조금 더 덧붙이자면 일본은 2000년대 초반부터 영토문제, 일본군'위안부'를 비롯한 전쟁책임의 문제등을 교과서에서 제외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계속 움직여 왔다. 


3. 문화적 이유 :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일본은 식민지배와 전쟁 책임에 대한 의식이 매우 낮다. 여기에 더해 인권 자체와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 인권에 대한 교육도 불충분하고 의식이 많이 낮다. 그 원인 중 하나로는 일본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성차별적 문화가 있다. 일본에는 성차별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불충분할 정도로 성산업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성매매, 성착취와 같은 문제는 일본군'위안부'와는 본질적으로는 여성폭력과 여성인권이라는 점에서 이어진다. 성에 대한 인식이 '성폭력' 자체를 인지하지도 못하게 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군'위안부'문제를 해결하려는 풀뿌리 시민운동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발표자인 구마노 고에이가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도 한「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라는 책을 통해 한일역사문제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정치나 외교 문제가 아닌 인권 문제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식민지배의 생존자들의 에세이도 담아 이에 대해 알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기도 한다. 곧 속편이 나올 예정이라고도 한다.  


 또 Fight for Justice라는 웹사이트에서는 일본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비디오와 온라인강의도 만들어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차별적인 문화적 이유를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배경 중 하나로 꼽았던 만큼, 일본군'위안부'관련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성매매 근절을 위한 운동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고 한다. 거리로 내몰린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지원을 직접 하기도 하고, 한국의 성매매 반대 운동을 소개하기도 하며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성차별적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일본 남성으로서 식민지배와 성차별 문제에 높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찰하고,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이어진 카토 교수님의 코멘트에서, 쿠마노 선생님이 연구와 운동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또 현재 시점에서도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본인도, 쿠마노도 일본인 남성으로서 가해 측으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마주하기 위해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지만,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이렇게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맞서는 일본인 남성이 적은 것이 문제라고 짚어주었다. 일본인 남성(과여성들이) 민족차별과 성차별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로 가져가야 한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이 반성이 없는 일본의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중심주의로부터 발생하는 가정 폭력 등에 대해서도 두 번째로 발표해 준 난징의 사례를 예로 들며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실천으로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저는 사실 카토 교수님의 코멘트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말하기 방식이 정말 너무 소중하다고 느꼈다. 코멘트를 시작하시면서도 "제가 지도교수이기 때문에 코멘트하기가 조금 어렵긴 합니다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셨다. 이는 지도교수이기 때문에 쿠마노를 띄워주는 말을 하기 어렵다는 말로도 들렸지만(실제로도 많은 칭찬을 해주셨고), 쿠마노가 받아들일 때 위계를 느끼게 하지 않도록 말하기가 어렵다는 뉘앙스로도 들렸다. 사실 '멘토'로서 코멘트해 주신 분들이 너무 '가르쳐주려는' 느낌이 강해서 불편했기 때문에 제 멋대로 해석을 추가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코멘트의 내용도 쿠마노의 역할에 대한 응원과 '함께 성찰해나가야 할 남성 동료'로서 자신을 위치 짓는 것이 '메이저리티' 혹은 '기득권자'로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는 말씀할 수 없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에서 진행했던 간담회를 통해 쿠마노 선생님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페미니즘을 대하는 태도 등에 너무 놀랐었는데, 이런 반성을 하기 위해서 주변에 저런 멘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는 답을 얻을 수 있는 포럼이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2부 워크숍에 대해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동티모르, 캄보디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실태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여성 청년들이 평화를 위해 어떻게 활약하고 있는지, 또 어떤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 동남아 지역을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따라가며 이해하기도 벅찼기 때문에 글을 남기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이번 자리를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4년 5월 19일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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