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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Mar 17. 2024

이도 저도 아니라서

달라도 괜찮은 정체성 이야기

졸업사진을 찍었던 2015년 여름, 친구가 예약해 준 메이크업샵에서 함께 메이크업을 받았다. 공주놀이를 하는 기분이라며 잔뜩 설레었던 친구와 다르게 어색해하던 내가 간신히 꺼내놓은 소감은 '여장을 하는 기분'이라는 말 한마디였다. 친구는 한참을 웃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는 여자잖아. 나는 그다지 스스로를 그렇다고 느끼지 않았고, 누가 나를 '여성'으로 취급한다고 느낄 때 상당히 불쾌감을 느끼곤 했다. 그날도 굉장히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4년, 나는 국제 여성의 날 행사에 참여해서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시원한 간극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 걸까?


부끄럽지만, 지난 3월 8일에 국제 여성의 날 행사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학생 때는 관심이 없어서, 직장을 구한 다음에는 일을 이유로 이래저래 마음을 내지 않다가 처음으로 참여한 자리였는데 기분이 되게 묘했다. 끝나고는 활동가 김진선인지 자연인 김진선인지 모를 중간 지점 어딘가로 활동가 친구들을 만나 새벽 늦게까지 술을 먹고 노래방에 가서 음주가무를 즐겼다. 날이 날이니만큼 '여성'이란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나는 사실 젠더학/여성학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만의 언어를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기득권에 친화적인 세상의 언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언어 사용에서 굉장히 조심스러워서 그냥 입을 다물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퀴어친화적이고 여성친화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활동가들의 세계관이 정말 편안했다. 이런 세상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도 나를 조금 더 일찍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나와 아주 오랜 기간 불화했다. 내 신체와의 불화,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 여성과 남성에 대한 비슷한 정도의 관심과 같은 것들에 대한 긴장감. 나를 이해하는 언어가 내 안에 부재하던 시절에도 숨기려야 숨겨지지 않았다. 종교라는 거대한 억압으로 나를 찍어 누르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에 엄마는 나의 이러한 자기표현들을 "청소년기에는 그 정도 혼란은 다 겪어."라는 말과 함께 자유롭게 뒀다. 함께 영화를 보면서 내가 여자배우나 여자 캐릭터의 섹시함에 열광할 때 '열림 교회 닫힘'이라 애초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던지 아빠는 아무 코멘트도 하지 않고 수용했다. 가족들로부터 거센 공격이 있었다면 싸우기 위해서라도 고민을 좀 했을 텐데 나는 딱 거기서 멈추고 말았던 것이다. 뭔가 어색한 옷을 입은 것 같은데, 그냥 그렇구나. 하는 정도.


나는 스스로를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에 딱 맞는다고 느끼지도 않지만, 남성이라고 느끼지도 않는다. 내 신체에 대한 불편감에 대해서는, 사회가 여성의 신체를 얼마나 폭력적인 시선으로 대하는지를 알게 되며 좀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정말 여성인 사실 자체가 싫었던 것인지 여성을 대하는 그 폭력적인 시선이 싫었던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사실 때문에 조금 생각을 보류해두고 있는 참이다. 여성의 날 저녁 한 활동가가 말했던 것처럼 '사회적으로 완벽한 진공상태'에 있는 나를 상상할 수 없고, 따라서 내가 갖고 있는 '성별 정체성'이 무엇이다라고 쉽게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아서다. 


이런 생각은 결국 이분법에서 벗어나려는 피스모모의 방식과도 닿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남성/여성 이렇게 나눠버리려는 것은 결국 누구를 편하게 만드는가? 누구 중심의 사고방식인가? 그 중간 어디쯤, 다양한 스펙트럼들을 우리는 어떻게 인정해 나갈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얼마나 안심했는지 모른다. 내가 있을 곳을 찾은 것 같아서. 글을 쓰면서도 이게 활동가 김진선의 글인지 자연인 김진선의 글인지 고민을 하게 된 부분이 생겼던 지점이기도 하다. 어쩌면 글을 계속 쓰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나의 이런 조각난 부분들을 하나로 통합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을 당시만 해도 내가 겪고 있는 신체와의 불화, 정체성과의 불화, 성적 지향과의 불화에 대해서 열몇 장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 여성의 날을 겪으면서 그게 그냥 편-안 해지면서 날아가게 되어 조금 아쉽기도 한 기분이다. 하지만 더 늦어지면 이 주제로 아예 글을 쓰지 않을 것 같아 지금이라도 글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달라도 괜찮아"지는 세상을 향해서 오늘도 샤랄라!(*피스모모에서 파이팅 fighting 대신 쓰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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