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직접 만난다는 일

"황현희의 조사하면 돈나와" 참여 방송 후기


“안녕하세요! 『황현희의 조사하면 돈 나와』입니다.

최근에 진행된 참여 방송 이벤트 당첨자분들을 대상으로 발송된 문자입니다.”


후훗. 나는 당첨 운이 꽤나 좋다. 어릴 적에는 기다랗고 까만 막대 과자를 사 먹고 나서 응모한 이벤트에서 가스오븐레인지를 받은 적이 있다. 몇 년 전에는 한 카드회사에서 보내주는 힐링 여행에 사연이 당첨되어 어머니를 모시고 무려 2박 3일 무료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다.


거만하고도 들뜬 마음으로 행운의 여신이 보낸 문자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데, 문득 이것은 행운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바로 날짜였다. 그날은 '운동회'가 있는 날이었다. 요즘 여러 가지 행사로 지쳐 있는 데다가 그날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에너지를 압축하고도 우주의 기운까지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하는 날이다. 다년간의 경험상 운동회 후에는 집에 돌아와 바로 침대와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후유증도 이틀 정도 간다. 당첨 문자가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갈까 말까?’ 며칠을 고민했다. 고민의 이유는 세 가지.

운동회 후 피곤할 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나, 강남과 너무 멀리 사는 나


너무나 악조건이었다. 그렇다면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구독자 3만 이벤트에서 30명 중에 내가 선택되었다는 것.


물론 3만 명이 모두 이벤트에 신청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한 천 명은 신청하지 않았을까? 그럼 경쟁률은 무려 약 33대 1이 아닌가!


수능 이후에 치열한 경쟁 없이 살아왔던 삶이라 그런지 경쟁률의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홍삼진액을 쭉 짜 먹고 비타민 B군을 입에 때려 넣고 비장하게 강남행을 선택했다.


‘버스-4호선-2호선-도보’ 코스를 거쳐 선릉역에 도착했다. 10번 출구 계단에 서는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개미 떼 같이 아래쪽으로 밀려드는 퇴근길 인파를 마주했다. 나는 그야말로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되었다. 가수 강산에 씨의 노래 가사처럼 힘찬 연어였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퇴근길 인파 속의 나는 울먹이는 연어였다. 아래 지하에서 보이는 저 계단 출구 끝의 세상은 어둠이었고 애써 그 어둠을 물리치고자 환하게 켜놓은 불빛은 피곤에 절어 있는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무대 장치처럼 느껴졌다.


참으로 긴 계단을 꾸역꾸역 걸어서 나는 드디어 지상 출구에 자리했다. 검은 어둠과 추적이는 빗길이 나를 맞아주었다. 우산을 접고 얼른 지하철 구멍으로 들어가는 퇴근길 인파들의 시작점이었다. 모든 의욕이 꺾였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집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무선 이어폰과 양산이 겸해지는 자그마한 우산을 멘털 관리 도구로 활용했다.


불이 꺼진 사무실, 사람들이 없는 텅 빈 커피숍. 살면서 저녁 6시의 선릉역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온통 두려운 분위기였다. 지하철만 타고 내리면 황현희 씨가 버선발로 나와서 나를 맞아줄 것만 같은 그런 핑크빛 상상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지도 앱이 알려 준 도보 8분 후, 건물 1층에 세워져 있는 행사 안내 표지판을 발견했다.

‘아! 잘 찾아왔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평소의 나답지 않게 맨 앞자리에 앉았다. 대학 시절부터 주로 벽 쪽 자리(컨디션이 좋은 날엔 벽 쪽 중 앞자리, 그게 아니라면 벽 쪽 중 뒷자리)를 공략했던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맨 앞자리에 앉아야겠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감정이 해소될 때쯤 황현희 씨와 주독 씨가 등장하셨다. 감정들이 한 김 식혀져서인지 감동의 눈물이라던지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은 행복감 같은 감정은 특별히 없었다.


평소 황현희 씨의 책과 채널을 즐겨봤던 터라 돈 이야기는 익숙하고 재미있었다.

‘이렇게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만 듣고 집에 돌아가는 건가?’

라고 실망하려는 찰나 본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일곱 명 정도의 구독자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봐도 소름 돋는다.


28세 투자자는 2개의 부동산을 투자 중인데 한 채 더 구입해도 되는지 궁금해했고 황현희 씨는 2개를 1개로 정리하고 추후 구입 분은 법인 제도를 활용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26세 투자자는 경제 서적을 150권 정도 읽었고 앞으로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독 씨는 자신만의 투자 방법을 찾았는지 물어보셨고, 찾았다면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해주셨다.


40대 투자자는 용인과 천안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데 요즘 부동산이 하락기라서 파이어가 힘들어졌다고 했다. 황현희 씨는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본인도 지금 원화 채굴 중이라고 하셨다.


20대 투자자는 현재 무주택 상태인데 개인 사정상 2025년 3월쯤 첫 주택을 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황현희 씨는 6억 이상의 종잣돈으로 왜 꼭 한 채를 구입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셨고, 구입 시기도 꼭 못 박을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본인이 구입하고 싶은 지역의 모든 아파트를 거의 외울 정도로 공부해놓으라고 하셨다.


21세 여자 대학생은 현재 알바를 하고 있는데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했다. 주독 씨는 소득을 늘리고 소비를 참는 과정은 부자 되기의 필수 단계라고 말씀하셨다. 황현희 씨는 본인에게 맞는 소비와 투자 방법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40대 투자자는 현재 본인이 재개발 아파트 투자하고 있는데 투자 멘털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질문했다. 이에 황현희 씨는 본인도 재개발 아파트에 투자하고 있는데 참 어려운 투자라서 일희일비는 금물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20대 후반의 전업투자자는 현재 약 25억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번 아웃이 와서 투자를 멈춰야 할지 계속해야 할지 문의했다. 주독 씨는 자신이 그 당시에 겪었던 감정들을 공유해주셨고 투자 비율을 조금 조정해보는 것을 제안하셨다.


각각의 사연이 너무나 놀라웠다. 그들은 어둠이 깔린 도시의 한 작은 사무실에 방청객처럼 앉아있던 회색빛의 구독자들이 아니었다. 일곱 명의 생생한 사연들과 황현희, 주독 씨의 조언은 그야말로 총천연색 무지개 빛 대화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행사는 끝이 났다. 모두 줄을 서서 황현희 씨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은 마치 일기장 검사를 받고 싶어 하는 1학년 학생들처럼 본인 순서가 되면 본인의 투자 이야기를 랩처럼 읊어댔다. 언제부터 얼마를 투자했고, 어디에 투자했다고 하면 황현희 씨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들어주고 그들의 삶을 응원해주었다.


가슴 뭉클한 장면들이었고, 마음에 도전이 되는 시간들이었다.


일주일 동안 고민하더니 결국 강남으로 출발해버린 내 소식을 궁금해했던 동학년선생님들이 문득 생각났다. 얼른 카톡방에 인증숏을 올려놓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연구실에 선생님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어미 새의 먹이를 기다리는 듯한 아기 새들처럼 그들은 내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왁! 아침부터 이렇게 집중받을 일인가!


순간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미 나에게는 퇴로가 없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마치 설교를 전하는 목사님처럼 숭고하게 내 수첩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어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사연과 황현희, 주독 씨의 조언을 풀어냈다.

20대부터 40대까지 모여든 직장동료들은 내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 반짝이는 눈으로 숨죽여 듣는 그들은 마치 사이비 신도들 같았다. 나는 어제의 은혜(?)를 단 1그램도 소실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소개했다.


구독자 : 유튜버 부읽남은 매년 1월 1일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는다고 했고, 유튜버 자청은 매달 1일에 그 책을 읽는다고 해서 저도 매달 1일에 책을 읽고 다이어리에 이렇게 표시하면서 읽습니다.

황현희 : 저는 그 책을 머리맡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아무 페이지를 펼쳐서 반복적으로 읽었습니다.


이 장면의 소개에 모두의 가슴에 뜨거운 불이 옮겨 붙었다. 이것은 흡사 부흥회였다. 대뜸 한 선생님께서 매주 경제 공부를 시작하고 제안했다. 그곳에 모인 동료들 모두 홀린 듯이 동의했고, 경제 공부의 첫 책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정해졌다.


일찍이 나는 연예인을 쫓아다녀 본 적이 없다. 팬클럽에 가입해서 연예인들을 쫓아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쯧쯧 혀를 찼던 '재미없게 사는 애어른'이었다. 다만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서 여러 가지 이벤트에는 꼭 참여한다. 공짜를 많이 좋아하는 천성을 눈치채셨는지 하늘에서는 나에게 몇 번의 좋은 기회를 종종 내려주셨다. 이번 작가와의 만남도 그런 좋은 기회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회가 내 생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첫째, 작가와의 만남은 작가와의 만남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작가와의 만남은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라서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치열하고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각자의 시간들이 모여 그 장소를 채우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벤트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하는 것이 좋다.


둘째, 작가와의 만남 후기는 꼭 주변에 나누어 주는 것이 좋다. 배움에 진심이고 긍정적인 동학년 선생님들은 아침부터 나를 부흥회 목사님으로 만들어주었다. 작가와의 만남은 한 번의 만남이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지면 지속적인 의욕과 움직임으로 번져 나갈 수 있다.


우왓! 작가를 직접 만난다는 일이 이렇게 신나고 멋진 일인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시작할 걸 그랬다.


앞으로는 이런 기회들이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싸돌아 다녀 볼 생각이다.


작가와의 만남, 요 녀석 참 쓸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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