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동영상에서 같은 걸 찾았어요!”
3교시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마친 뒤 쉬는 시간에 혜진이가 찾아왔다. 예진이의 표정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표정 같았다. (누군가 당신은 콜럼버스를 만난 적이 없지 않냐고 까칠하게 따지신다면 저는 담백하게 ‘환희에 찬 표정’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오늘도 겸손.)
학교폭력 예방교육에서는 방관자가 되지 말자는 의미로 지하철에서 노인이 구출되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한 노인이 지하철 플랫폼과 지하철 사이에 몸이 끼었는데 처음에는 아무도 그 노인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데 적극적인 시민 한 사람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어 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힘껏 밀어냈다. 결국 노인은 안전하게 구출되었다.
혜진이는 그 동영상에서 뭘 찾은 걸까? 궁금했다.
“아까 2교시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이건 데요. 여기 주인공이 환경에 관심이 많거든요. 처음엔 외롭지만 나중에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근데 3교시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동영상도 용기 있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잖아요. 똑같은 이야기라서 놀랐어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우리 혜진이는 콜럼버스가 맞았다! 독서의 신대륙을 발견한 우리 혜진이! 장하다 혜진이! 내 제자 혜진이!
나는 마치 금메달을 딴 선수의 코치처럼 콧구멍을 한껏 넓히며 만세를 불렀다.(누군가 당신은 금메달리스트 코치가 아니지 않냐고 또 한 번 까칠하게 따지신다면 저는 시크하게 ‘티브이로 봐서 그 기분은 좀 알 것 같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이번엔 당당.)
4교시 시작종이 울리자마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혜진이 대박이야!”
“왜요?”
독서와 영상을 연결한 혜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건 무척이나 똑똑한 어른들만이 할 수 있는 독서법이라고 소개해주었다.
“서로 관련 없는 책을 두 권 읽으면서도 두 권을 연결해버리는 생각! 그걸 우리 혜진이가 해낸 거야! 얘들아, 이거 절대 쉽지 않은 거야! 앞으로 혜진이는 무조건 책을 두 권씩 들고 다니렴! 넌 그럴 자격이 있어!”
‘책을 두 권씩 들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이들이 과연 알까?’ 조바심이 나서 숨도 안 쉬고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금메달리스트 코치가 된 상태로 4교시를 마쳤다. 그러나 흥분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금세 배고픔이 다가왔다. 여느 때보다 점심식사가 더 절실했다.
자리에 앉아서 경건한 식사를 막 시작하려는데 민찬이가 슬며시 내 옆으로 왔다.
“선생님, 저는 다음 주에 책 세 권을 연결해 올게요.”
그는 마치 암표를 파는 사람처럼 비밀스럽게 나에게 소곤거리고 홀연히 떠났다.
급하게 밀어 넣은 국이 뜨거운 건지, 내 가슴이 뜨거운 건지 뜨끈한 것이 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아무튼 뜨거운 점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