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만든 영상 파일을 선생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학생들에게 개인 핸드폰 번호를 공개하지 않은 터라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앗. 이메일 주소가 없단다.
그러면 USB에 담아오라고 했다. 핸드폰에서 편집한 것이라 USB에 담을 수 없다고 했다. 후.
결국 핸드폰 번호 알려주고 카톡으로 보내라고 했다. 그제야 학생은 만족하는 표정을 짓고 순순히 하교했다. 문득 '처음부터 내 핸드폰 번호를 노린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지난 10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서 개인 핸드폰 번호를 지켜냈던 내 정성(?)이 한 방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꼼꼼한 성격의 교사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꼼꼼함이 들어있지 않은 그저 꼼꼼하게 보이는 ‘꼼꼼함’이라는 상자만 가지고 다니는 교사였기에 포기의 순간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역시 나는 꼼꼼하지 않은 스타일)
“카톡!”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서 쉬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반갑지 않은 ‘저녁 카톡’에 반응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메시지를 눌러버렸다. (역시 나는 누르고 후회하는 스타일)
이미 누른 거 영상 파일을 감상했다. 4학년이 만든 것 같지 않은 정말 멋진 영상이었다. 영상 감상을 마친 후 카톡을 종료하려는 순간, 프로필 사진이 수상했다.
아뿔싸! 프로필 사진에 내 얼굴이 있었다. 지난 현장체험학습에서 아이들과 함께 셀카를 찍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진이었다. 다행히 사진 속의 나는 큰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프로필 사진이나 구경해볼까 하면서 카톡 프로필 사진 위의 숫자를 보았는데 '1/1'이었다. '1/5'나 '1/238'이 아니라 '1/1'이었다. 여러 장 중에 한 장이 아니라 한 장 중에 한 장이라는 것이 갑자기 의미 있게 느껴졌다. (역시 나는 의미부여 잘하는 스타일)
그다음은 상태 메시지를 확인할 차례다.
“선생님 너무 예뻐요!”
으악 기절이다. 남편도 아들도 해주지 않는 말이다.
‘이 “선생님”이 내가 맞겠지? 암. 맞고야 말고! 프로필 사진이 '1/1'이잖아! 이건 오직 나를 향한 상태 메시지라고!’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카톡 이것저것 확인하면서 은밀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건 마치 숨죽여 로또 번호를 맞추고 있는 내 모습과 같았다. 로또 번호는 주로 혼자 맞춘다. 그리고 맞는 번호가 나오면 나올수록 목소리를 애써 누른다. 혹시 다음 번호도 맞을까 봐 아직 큰소리는 못 낸다. 그리고는 앞서 맞은 번호를 재차 확인한다. 혼자 호들갑을 떨면서도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것은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
학생의 카톡과 상태 메시지에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가 싶으면서도 저녁 내내 기분이 좋았다. 내가 실제로 예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 저녁 시간엔 오직 나와 그 상태 메시지만 존재했을 뿐이다.
단지 ‘꼼꼼함’만 들고 다니는 나 덕분에 오늘 ‘저녁 카톡’이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