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저금통


교실 문을 열어놓고 맑은 가을 하늘과 살랑이는 바람을 느꼈다. 오늘도 감사했다.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신 선배 선생님이 생각나서 전화를 드렸다.


“영미, 요즘 글 잘 보고 있어.”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꼭 써보라고 하신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재밌더라. 근데 글의 장르가 뭐야?”


“장르요?”


“음... 에세이야? 어떤 소설이야? 그걸 뭐라고 해야 해?”


“아. 에세이예요. 글에 나온 내용은 다 진짜 있었던 일이에요.”


“아, 진짜? 그 학교에 그런 애들이 있다고?”


웃으면서 절대 ‘소설 쓰는 사람’이 아님을 밝혀드렸다.


“영미 뭐야. 나 정말 좌절했어. 교직경력이 몇십 년인데도 난 그런 아이들을 만난 적도, 그런 교사인 적도 없었던 것 같아서 갑자기 부끄럽다.”


“선생님, 걱정 마세요. 내년 일은 또 모르는 거 아시잖아요. 한해살이 교사 인생, 절대 방심하면 안 된 다구요. 제가 내년에 또 엄청 힘들어할지 누가 알아요? 하하하하하.”


“맞아. 혹시 내년에 힘들어지면 지금 쓰고 있는 ‘긍정 교직 에세이’ 말고 ‘부정 교직 에세이’도 한 번 써봐. 난 그런 글이 좋아.”


“네. 하하하하하.”


평소에 늘 솔직하신 분이었고, 정말 나를 아껴주시는 분이라는 신뢰가 있기에 선생님의 말씀을 오해하지 않고 다 이해할 수 있었다.


‘명예퇴직을 하신 분을 좌절시킨 풋내기 교사’라니 어쩌면 어깨가 봉긋하게 올라갈 수도 있었겠다.(죄송합니다. 솔직히 0.01초 동안 0.01센티는 올라갔었습니다.)


그러나 얼른 정신을 차리고 ‘비교’ 2 행시를 떠올렸다.


‘비: 비참해지거나

교: 교만해지거나’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기 싫었다. 왜냐하면 ‘한해살이 교사 인생’이라는 단어를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때문에 법률을 찾아볼 때도 있었고, 교권침해를 당해서 우울증을 겪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기에 언제나 나는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나의 0.01센티 올라간 어깨를 비웃 듯 그다음 날 아이들은 말을 잘 안 들었다.


‘아니, 우리 반 학생들이 어제 선배 선생님과의 통화를 들은 것인가? 이것은 다크 한 ‘부정 교직 에세이’ 도 써보라고 하늘이 주시는 기회인가?‘ 싶을 정도였다.


오늘의 아이들은 제각기 자기 맘대로였고, 나는 매우 엄격한 선생님이 되었다. 1교시부터 5교시까지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분위기 조성의 차원에서의 표정관리도 있었겠지만 오늘은 진짜 아이들이 미웠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니 짜증과 피곤이 몰려왔다. 며칠 동안 노력해서 유지한 긍정의 감정을 잃어버린 것 같아 무척 속상했다.


그렇지만 ’ 내가 부정의 감정을 알아차렸다 ‘는 것을 알아차렸다. 좋은 노래, 좋은 생각으로 다시 긍정의 감정을 찾고 싶었다. 금방 안되었다. 역시 쉬운 것이 아니었다. 교실 밖으로 나갔다. 학교 건물 주변을 좀 걸었다. 한 바퀴, 두 바퀴. 걷다 보니 기분이 좀 나아진 듯했다. 그리고 어제 선배 선생님과의 통화 내용이 떠올랐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선배 선생님께 전화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말씀드릴까? 하다가 당장 교실로 올라와 메모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글을 쓰는데 갑자기 문득 ’ 돼지 저금통‘이 생각났다.


매일 학생 26명, 학부모 26명(최소), 공문 00개의 변수들과 만나야 하는 교사는 심리적 돼지 저금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좋은 기억을 저금해서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경험을 가졌다고 축배를 들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서 돼지저금통에 저축해놓아야 한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꺼내 쓰면 된다.


혹시 너무 많이 꺼내서 동전이 없다면 스스로 작은 성공 경험을 만들어서라도 저축을 꼭 해놓아야 한다.


예를 들면 아이들과 소통했던 경험이나 새로운 수업을 시도해서 성공했던 경험, 내 업무를 조금 더 완벽하게 처리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경험, 주변 선생님들과 즐거웠던 경험들이 다 저축될 수 있다.


’ 아이들이 귀찮다, 새로운 수업 적용은 피곤하다, 업무는 대충 하고 싶다, 혼자가 편하다. ‘는 생각은 결국 꺼내서 쓸 동전이 없는 가난한 교사를 만드는 생각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죄책감은 갖지 마세요. 솔직히 저도 이런 생각 많이 했습니다.)


가난한 교사는 꺼내 쓸 긍정의 동전이 없다. 슬프게도 그러면 또 더 가난해진다.


와. 자본주의에만 부익부 빈익빈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꾸역꾸역 매일 글을 쓰다 보니 결국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네요.)


이제부터 더 적극적으로 돼지 저금통에 좋은 생각, 좋은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더 나아가 혹시 돼지저금통이 넘치면 좀 나누어주는 것도 좋겠다는 큰 꿈도 그려본다.

(하지만 오늘 제 돼지저금통의 잔고는 비밀입니다. 부끄럽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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