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집단이 그러하듯 교직 사회에도 타짜와 사짜가 있다.
내가 내린 타짜의 정의는 진짜 좋은 사람,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이다. 사짜는 물론 피해야 하는 사람이다.
경력이 짧은 시절에는 나에게 잘해주면 타짜, 그렇지 않으면 사짜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자기중심적이고도 고무줄 같은 기준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날은 잘해주다가 어떤 날은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타짜인가 사짜인가?
나에게 잘해주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타짜인가 사짜인가?
그동안의 교직 생활을 통해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상황들을 만나면서 타짜와 사짜를 구별할 수 있는 근거와 관점, 그리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
자, 이 귀한 비기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만 살짝 알려주겠다.
대신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절대 아무에게나 발설하지 말 것.’(사짜들의 전형적인 멘트.)
수업 이야기를 할 때.
“라떼는 말이야” 하며 옛날 수업 이야기하는 사람은 사짜,
오늘 수업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타짜다.
승진 이야기를 할 때.
모든 관리자를 싸잡아서 욕하는 사람은 사짜,
괜찮았던 몇몇 관리자를 떠올리는 사람은 타짜다.
돈 이야기를 할 때.
돈 자랑만 심하게 하는 사람은 사짜,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그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은 타짜다.
삶 이야기를 할 때.
남의 이야기를 주로 하는 사람은 사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타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사짜인지 타짜인지 구별해보자.
수업, 승진, 돈, 삶 이야기 말고 다른 기준은 없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겠다.
‘부정적인 사람은 사짜, 긍정적인 사람은 타짜다!’
나는 긍정적으로 살고 싶다. 그래서 주변에 긍정적인 사람들만 두고 싶다.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 반대로 그것이 꼭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제안이 떠오른다.
내가 먼저 긍정 에너지를 발산해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이 생각을 실천한다면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또, 주변에서 좋은 평판도 들을 수 있다.
정말 운이 좋다면 긍정적인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오고 늘 당신 곁에 머물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제일 좋은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당신이 타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타짜가 된 당신을 상상해보라! 생각만 해도 가슴 뛰지 않는가?
(앗. 아무리 상상해도 가슴 뛰지 않았다면 당장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사짜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