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까지 집단의 성격도 만남의 목적(?)도 정말 다양하다. 예를 들자면 조손가정의 경우 1학년 학생은 8세인데 그 학부모님으로 60세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2학년 담임의 경우 학생은 9세인데 동학년 선생님은 58세인 경우도 있다. 실제로 나의 경험이다.
어쨌든 매일 10대부터 60대까지의 거대한 스펙트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교사의 현실이다.(요즘은 가정의 형태가 다양하고, 100세 시대니까 이 스펙트럼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모두의 발령 첫날이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는 예상치 못한 나이의 사람들을 쓰나미처럼 만나게 되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사 커뮤니티를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감당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선생님들의 글을 속속 발견할 수 있다. 절망적인 것은 ‘너무 어려운데’, ‘힘든데’, ‘방법을 모르겠는데’, 내일 또 그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월급이 나온다. 먹고살 수 있다. 물론 나 또한 경험했던 감정이다.
이 상황 속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거나, 명상을 배우는 등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분들이 있다. 아주 훌륭한 분들이다. 그런 분들은 정면 돌파 경험을 통해 노하우를 갖게 된다. 또 그것을 나누고자 책을 쓰시고 연수를 다니신다.(존경합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게 적극적이거나 긍정적인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많이 웃는 것과 눈치 보기(자꾸 하다 보면 배려가 됨), 이 두 가지였다. 이 두 가지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궁금하지 않다면 패스 하셔도 됩니다.)
무조건 많이 웃는 것. 즉 미소는 고3 때 담임선생님께서 ‘너희는 못 생겼으니 웃어야 한다. 무조건 웃어라.’고 말씀해주셔서 시작하게 되었다.
눈치보기. 발전하면 배려가 되는 그것은 어머니께서 ‘넌 왜 이렇게 눈치가 없니!’라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시작하게 되었다.(다들 이런 경험 있으시죠?)
그나마 이 두 가지로 교직 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영향을 주신 두 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다시 하고 싶은 말로 돌아간다.)
시간이 좀 많이 걸리긴 했지만 두 가지 방법도 나름 효과가 있었다. 앞서 말한 훌륭하신 분들의 ‘날카로운 칼’에 비하면 정말 ‘무딘 칼’을 가진 나였지만 그래도 학교라는 전쟁터에서 이렇게 살아남았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있다.(‘무딘 칼’의 장수에게도 깨달음이 온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첫째, 미소가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 온다. 당연히 사람들은 찡그리는 사람보다는 미소 짓는 사람에게 끌린다. 많이 웃으면 어느새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온다. 그러면 학교가 힘들어도 좋은 사람들에게 의지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용기가 조금 생긴다.
둘째, 눈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온다. 눈치 있게 행동하려면 언제나 상대방을 잘 관찰해야 한다. 관찰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들이 조금씩 보인다. 그걸 행동으로 옮기면 바로 배려가 된다. 눈치가 배려로 업그레이드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배려하는 사람을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것이 나에게 많은 기회로 돌아온다.
셋째, 미소와 배려가 있는 사람에게는 성장이 온다. 미소와 배려로 버티다 보면 분명 한계가 드러난다. 그러면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앞 단계에서 생긴 사람과 기회들이 나에게 답을 준다. 실제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회로 나는 여기까지 성장했다.(음. 대단한 위치는 아닙니다만. 저는 지금 진행형이니 아직 저를 한계 짓지 말아 주세요. 물론 비웃음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 세 단계를 다 경험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보너스처럼 놀라운 생각이 뿅! 하고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같이 성장하고 싶다.’라는 생각이다.(혹시 이 생각이 아직 들지 않았다면 미소와 눈치 보기, 아니 배려를 더 실천하십시오.)
요즘 좋은 동학년 선생님들과 ‘같이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같이 성장’하는 것이 진짜 가치 있는 성장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6반 중에서 5명이 올해 전입교사로 구성된 우리 학년은 ‘같이 성장’하면서 행복한 전입 학교 적응기를 써가고 있다.
단언컨대, 이토록 행복한 전입 교사들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혹시나 예전의 나처럼 고민하고 방황하는 교사들이 있다면 감히 추천해주고 싶다.
학교생활, 미소와 눈치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