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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딩크 선생님


“선생님, 우리 반이랑 축구 한 판 할래요? 심판은 제가 볼게요.”


내 귀를 의심했다. 2반 선생님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어머. 축구요? 선생님께서 축구 심판을 볼 줄 아세요?”


“응, 알고말고! 내가 축구 룰 다 알고 같이 뛰면서 심판을 봐. 아주 공정하게!”


2반 선생님은 40대 중반의 여 선생님이시다. 일찍이 교직에서 40대 중반의 여선생님께서 축구 심판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들은 적이 없다.


“나 신규 때는 힐 신고 애들이랑 축구했잖아.”

“네?”

“한참 젊을 때는 학급 대항 축구 대회에서 우리 반이 늘 1등이었지. 축구는 꼭 1등 하고 싶어서 특별 훈련을 시켰어. 그래서 그 당시 내 별명이 송딩크였어요.”

“네?”

“우리 아들도 초6까지 축구 선수팀에 있었어. 아들 축구 경기 따라다니면서 정말 재미있었지.”

“네?”

‘네?’만 반복했다. 들을수록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이런 보석 같은 언니 같으니라고!

선생님 덕분에 지난주 체육시간에는 2반 선생님의 지도로 남자아이들은 축구대항전을 했고, 여자아이들은 나의 지도로 피구 대항전을 했다. 2반 선생님은 진짜 계속 뛰어다니시면서 심판을 보셨다. 경기가 다 끝나자 1시간에 5천보 뛰었다면서 자랑스럽게 만보기를 보여주셨다. 이렇게 축구에 진심인 분은 처음이었다.


지난주 1차 전 경기 이후로 오늘은 2차 전 경기를 펼쳤다. 2반 선생님께서는 남자아이들을 불러 모으셨다.


“얘들아, 오늘 저녁에 대한민국의 축구경기가 있다! 모두 알고 있지?”

“네!”

“이렇게 중요한 날에 우리가 이렇게 축구경기를 하게 된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야! 알고 있지?”

“네!”

“우리 경기 전에 다 같이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시작하자!”

“네! 대한민국 파이팅!”


4학년 남자아이들의 포효는 마치 군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대화는 내 가슴까지 뜨겁게 지폈다.


선생님은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달리셨다. 그리고 절도 있게 호루라기를 부셨다. 아이들은 열정과 공정을 갖춘 심판의 판정에 ‘찍’ 소리 없이 따랐다.


그저 따뜻하기만 한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에는 뜨거운 축구 열정이 끓고 있었다. 와! 반전 매력이었다.


멀리서 사진 한 장 찍어드렸다. 선생님 너무 멋지시다고 카톡으로 전송해드렸다.


그러나 사실은 개인 소장용이었다.


교직이 허무해질 때, 용기가 나지 않을 때, 모든 것이 귀찮아질 때 이 사진을 다시 열어보고 싶다.


이렇게 곳곳에서 멋진 선생님들을 발견할 때면 마치 멋진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자꾸자꾸 보석들을 더 발견하고 싶다. 그 열정을, 마음을, 에너지를 닮고 싶다. 응원해드리고 싶다.


“송딩크 선생님, 늘 건강하세요. 정년퇴직까지 축구 심판 꼭 봐주세요! 건강하셔야 해요!”


문득, 송딩크 선생님께 멋진 검정 유니폼을 선물해드리고 싶다.

(이제 치킨 뜯으러 가야지. 대한민국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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