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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뒤집기


“오늘, 그 선생님 좀 그랬어.”


퇴근 후 남편은 나에게 학교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떤 선생님의 행동에 크게 실망한 모양이었다.


“여보, 오늘은 나도 어떤 선생님이 좀 그랬어.”


공교롭게도 다음 날 나도 남편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유난히 서로에게 실망할 일이 많은 요즘. 왜일까? 요즘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있었다. 나름대로 쥐어짜 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기 말은 바쁘다. 학기 말이 되면 선생님들은 더욱 바빠진다. 매일 준비하는 수업 외에 제출해야 하는 문서들이 급격히 늘어난다. 교원평가 자기소개서, 학급운영과 업무에 대한 자기 실적 평가서, 전문적 학습공동체 결과 보고서, 학교폭력 가산점 신청서, 차년도 학년 및 업무 희망서 등 갑자기 여기저기서 내라는 서류들이 많아진다. 게다가 개별 업무에서 진행했던 보고서나 정산서 제출 등을 준비해야 하는 기간이다. 이렇다 보니 선생님들은 서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평소에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일들도 이 때는 조금 삐걱거리는 경향이 있다.


둘째, 학기 말은 어수선하다. 7월이나 11월 경에는 관리자분들이 늘 당부의 말씀을 하신다. 학교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기간에 학교폭력이나 안전사고의 발생률이 평소보다 더 높아진다는 통계도 있다. 이에 선생님들은 긴장도가 높아진다. 이 기간에 아무 일 없이 잘 넘어가면 좋은데, 안전사고나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게 되면 선생님들은 그야말로 멘붕이 온다. 자연히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


셋째, 학기 말은 다음 해를 준비한다. 10월부터는 슬슬 다음 해 업무분장이나 학년에 대한 정보가 돈다. 정식발령은 아니지만 교사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면서 학년 분장표를 작성해보기도 한다. 이른바 ‘민간 발령 놀이’를 시작한다. 교사들끼리 이 놀이를 하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학년이나 업무 배정에 대한 학교 내규에 따라서 우선권을 가지신 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면서 본인이 가능한 자리들을 찾아본다. 여기에는 학교 체계라는 우주의 큰 질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본인의 사적 이익을 자연스럽게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녹아있다. 가끔 그런 것과 관계없이 과감히 움직이는 분들도 계시긴 하지만, 대부분 ‘민간 발령 놀이’를 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년이나 업무 신청을 한다. 그래서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시간보다 앞으로 함께할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아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는 조심했던 행동들이 무심함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누군가에게 실망한다는 일은 참 씁쓸한 일이었다. 씁쓸한 가슴을 부여잡고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켰다. 평소 김창옥 교수님 강의를 잘 보는 덕분에 오늘은 알고리즘이 그분의 쇼츠를 나에게 제공했다.


“여러분, 저는 눈이 참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보셨죠?”

“…”

“아, 적절하지 않은 예시 죄송합니다. 제가 공감하실 수 없는 이야기를 했네요.”

“하하하하하.”

“저는 눈이 참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을 보고 눈 아래쪽을 뒤집어 보게 되었습니다. 예쁘지 않았죠. 사실 안구 전체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눈꺼풀로 덮여 있고, 우리는 눈동자 부분만 보게 되죠. 우리가 눈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안구의 일부분만 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의 전부를 알고 예쁘다고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이상적 기대를 갖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식에게도. 나에게도 이상적 기대를 갖지 않는 것. 저는 그게 더 건강한 것 같아요.”


이상적 기대를 갖지 않는 것. 이 한마디에 눈물이 흘렀다. 속상한 마음이 스르륵 풀어졌다.

그동안 나는 학교에서의 좋은 교사, 좋은 관계, 좋은 분위기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동료 선생님들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닐까? 이상적 기대로 가득 차 있던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유튜브와 김창옥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매일 아침 나의 루틴이 하나 더 늘었다.


눈 뒤집기!


(오늘 아침에 눈 뒤집다가 아들이 뭐하냐고 해서 급히 혀를 내밀어 ‘눈 뒤집기+메롱’을 해줬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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