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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아 줄 결심


오랜만에 대면 출장을 갔다. 주제는 ‘마을교육공동체 마중물 모임’이란다.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마을교육공동체’에다가 마중물까지 붙였으니 더더욱 부담스러운 출장이 아닐 수 없다. 학교 안 교실 수업만으로도 바쁜 교사들에게 학교 밖까지 신경 써야 하는 ‘마을교육공동체’라는 단어는 늘 부담스럽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슬로건에는 모두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본인 업무에 ‘마을교육공동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으레 ‘아, 이거 판이 커지는구나!’하고 얼른 36계 줄행랑을 친다. 의사소통의 대상, 시간, 비용이 몇 배는 더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런 교사들에게 마중물 모임이라는 것을 열어 준 이유가 궁금했다.

담당 장학사님의 소개 말씀을 차분히 듣는다.


“안녕하세요. 제가 몇 년 동안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매년 반복되는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마을교육전문가를 찾기 힘들다고 하시고, 마을교육전문가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셔서 오늘 두 그룹의 찐한 만남을 제가 주선해보았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각 마을교육전문가들께서 준비한 부스에 방문하셔서 우리 학교에 맞는 마을교육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 가지 이상 찾아가시는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맞다! 맞아! 교사와 마을교육전문가는 서로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막상 찾을 수 없는 그 관계였다. 우리는 서로 알음알음으로 번호를 따는 그런 사이였다. 경험이 많은 마을교육전문가를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 바로 마을교육이 부담스러웠던 이유 중에 하나였다.


갑자기 이 출장이 맘에 들었다.(쉽게 설득당하는 편.)


다음은 교육과장님의 말씀이 이어졌다.(지루할 것으로 예상하고 벌써 고개 숙임.)


“제가 이 나이가 되니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추억도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모두 만들어주신 분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 다양한 친구들과 동네 마당에서 놀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묵묵히 손님을 치러내시던 우리 어머님 덕분이었습니다. 추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분명 그 바탕을 깔아준 사람들이 있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오신 모든 분들이 학생들에게 추억의 바탕을 깔아주시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애써주심에 늘 감사드립니다.”


교육과장님의 진솔한 말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엄마’ 레퍼토리가 통했나?)


교사인 내가 할 일은 ‘바탕을 깔아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20대나 30대에 이 말씀을 들었다면 반감을 표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왜 깔아 줘야 해? 도대체 어디까지 깔아 줘야 해?’

그 당시에는 이렇게 반문했을 나다.


이제 40대가 되니 조금은 여유가 생긴다. 그동안 나의 추억을 위해 바탕을 깔아주었던 많은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사람의 바탕을 깔아주는 일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볼 용기와 결심도 생긴다.


사실, 교직은 언제나 깔아주는 직업이다.


그러나 교직에 들어서서 바로 ‘깔아줄 결심’을 가질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다. 어떤 날은 자의로 깔아주고, 어떤 날은 타의로 깔아주게 된다. 언제나 보람찬 하루하루는 아니다. 분명 힘들고 외롭고 어려운 시간이 있다.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게 되다 보면 기꺼이 ‘깔아줄 결심’이 생기는 날이 온다. (나에게는 비로소 오늘 도착.)


그 결심은 언제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다. 왔다가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기다리는 자에게는 끝내 온다. 마치 산타할아버지처럼.

올 크리스마스에는 ‘깔아줄 결심’이 많은 교사들에게 도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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