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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상한 교실


요즘 우리 반 아이들이 수상하다. 매일 모여서 쑥덕거린다. 그리고는 요상한(?) 일들을 펼친다. 한두 번 겪어보니 이제는 매일 아침 ‘오늘의 요상한 일’이 궁금해진다. 이별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 요상한 일들을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1일 차

연구실에서 나오는데 아이들이 교실 앞문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까부는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를 낼까 하다가 한 박자 쉬고 동네 할아버지 느낌으로 접근했다.

“아그들아! 뒷문으로 댕겨야지!”

“헤헤헤. 선생님 저희 오늘 앞문 통행 3번 했어요! 청소 당첨이에요!”

“응?”

1학기 초에 아이들이 뒷문에서 나와 앞문으로 지나다니는 잡기 놀이를 많이 했는데, 학급 회의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앞문 통행을 금지했었다. 그리고 3번 이상 앞문 통행을 할 경우 남아서 청소를 하자는 학급 규칙이 생겨났다. 최근까지 잘 지켜지던 규칙이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이 규칙을 어긴다. 왜지?

“얘들아! 청소하고 싶어?”

“네!”

“왜?”

“선생님이랑 더 있고 싶어서요.”

아! 심쿵했다.


2일 차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출근하는데 한 학생이 무릎을 굽히며 양손을 반짝반짝 흔든다. 살짝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나도 같이 대꾸해 줬다.

“신나는 에버랜드! 고객님 환영합니다.”

“선생님 여기는 에버랜드가 아니고 신나는 4학년 4반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근데 이거 왜 하는 거야?”

“선생님 기분 좋으라고요.”

책상에 앉았더니 등교하는 아이들마다 에버랜드 인사를 하면서 교실에 입장한다. 오늘의 요상한 일은 놀이공원식 인사였다.


3일 차

“자기야! 반가워요!”

엥? 자기야? 이건 또 뭔 소리?

“야! 오늘의 인사는 ‘자기야’인 거니?”

“네.”

“‘자기야’는 좀 부담스러운데?”

“선생님은 우리랑 다 사귀어야 해요. 우리 모두의 ‘자기’거든요.”

“아. 그런 거야?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야’는 좀 그렇다야.”

“그래도 오늘 하루는 우리의 ‘자기야’ 해 주세요. 남편한테는 비밀로 해줄게요.”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아이들의 ‘자기야’ 장난을 받아주어야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느끼하게 까부는 녀석들이 밉지 않았다.


4일 차

점심을 먹고 나니 몇 명의 아이들이 아이브의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요즘 여학생들이 아이브 노래를 즐겨 듣고 교실 한편에 모여 춤 연습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춤 연습 하려고 하나 싶어서 틀어 주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내 앞으로 모여들더니 아이브 춤을 춘다. 그리고 마지막엔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외치고는 흩어진다. 마치 예전에 유행했던 ‘플래시몹’을 보는 듯했다.

4일 차 요상한 일에서 결국 나의 눈물샘은 터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역시나 못 말리는 까불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재미있게 노는 모습이 귀엽다'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에는 그들의 진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진심 어린 요상한 일 앞에서 나는 무장 해제되었다.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훌쩍이는 나를 보며 아이들은 기상천외한 짬뽕(?) 위로를 건넸다.


“선생님 울지 마요. 우리가 또 청소할게요. 야 빨리 앞문 통행해!”(1일 차 수법)

“선생님 에버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일 차 수법)

“자기야 울지 마요. 자기가 울면 나도 슬퍼요. 자기야.”(3일 차 수법)


이 아이들은 과연 2022년 지구에 존재할 수 있는 열한 살 아이들이 맞는가 싶었다. 나의 웃음과 나의 울음에 그저 하루가 행복한 저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 끝을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그저 경이롭고 사랑스럽다.


나는 매일 아이들이 준비해 놓았을 요상한 일을 경험하기 위해 출근한다.

(만약, 아이들이 준비한 요상한 일이 없다면 나는 실망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바로 요상한 간식을 제공할 예정이다. 역시 나는 준비성이 철저한 여자.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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