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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간선생님


2021년 2월 말. 교장 선생님께서 교장실로 급히 부르셨다.

“유 부장! 인사해! 앞으로 너랑 같이 근무할 앤 데. 얘는 교간이야.”


“교관이요?”

“아니, 교관 아니고 교간!”

“교간이 뭐예요?”

“곧 교감이 될 건데, 아직 교감 발령이 안 났으니까 교간이야. 받침 니은이 곧 미음이 될 거야.”

2021년 3월 1일 자로 우리 학교로 전입하신 A교간 선생님은 2021년 한 해 동안 정말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셨다. 2020년까지는 교무부장을 하면서 정말 힘들었는데 2021년에는 그저 1학년 담임으로만 학교를 다니게 되어 몸과 마음이 편하고 좋다고 하셨다. 분명 마스크를 쓰셨는데 언제나 마스크 밖으로 웃음이 흘러넘쳤다.


내 주변 승진하신 분들에게 언제가 제일 좋았냐고 여쭈어보면 대부분 교감연수대상자로 확정을 받거나 그 연수를 받은 후에 발령을 기다리는 이 시기, 교간 시기를 가장 좋았다고 하셨다.


0.01점 또는 0.001점 차이로 교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 하는 그 숨 막히는 기로에서 합격이라는 통지서를 받아놓았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관리자들과 교사들의 사이에 끼어 늘 눈치(?)를 봐야 하는 그 어렵고도 무거운 교무부장의 자리에서 이제 내려와도 된다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 기쁨과 홀가분함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그동안 바쁘게 열심히 살아온 만큼 그 시간이 정말 달콤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되돌아보니 실제로 교간님들은 그 기간에 참 많은 일을 한다. 내 주변의 교간님들을 바라본 경험으로 몇 가지 정리해 봤다.


첫째, 돌보지 못한 가정을 돌본다. 보통 승진을 위해서 교무부장을 3-5년 정도 하는데, 교무부장님들은 그 기간 동안 학교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렇기에 교감연수대상자로 차출되면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잘 살피지 못했던 가정 살림이나 가족들을 돌본다. 실제로 이 기간에 몇 년 묵은 이삿짐을 푸셨다는 분이 계셨다. 또 가족들과 긴 여행을 가시는 분들도 봤다.


둘째, 마지막 담임교사의 역할을 즐긴다. 앞으로 온전히 담임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정말 열정을 쏟아내시는 분들을 봤다. 일 년 동안 아이들과 쓴 글을 엮어서 문집을 내신 분도 봤고, 학부모들과 독서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시는 분도 봤다.


셋째, 미뤄둔 미모(?)를 챙긴다. 특히 여자분들은 소소한 시술이나 쁘띠 성형에 도전하시곤 했다. 얼굴에 테이프를 잔뜩 붙이고 오면 교사들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교감이 되면 입을 발령복을 사러 간다면서 정장을 잔뜩 사 오시는 분들도 봤다.


아, 마지막 한 가지가 빠졌다!


이 기간에 교간님들은 주변 사람들을 챙긴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모임들에 참석하시면서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신다.


새로운 역할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을 털어놓으시고, 그동안 차마 하지 못했던 고생담(?) 들도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털어놓는다.(‘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시즌10까지는 나올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같이 철없는 후배들에게 따뜻한 덕담을 나눠주신다.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해라’ 하시면서 진짜 주옥같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신다.


그리고 몇 개월 뒤 그들은 교감이 된다.


다시 치열한 현장 속으로 딥 다이브! 그것도 신규의 신분으로!


2022년 3월. A교감 선생님께서도 발령을 받으셨다.

가끔 통화해보면 3월은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셨다. 바쁘면서 동시에 속상한 일도 많은데 어디에 이야기하기도 어렵다는 속 이야기도 털어놓으셨다. 잘하실 수 있다고 응원도 해드리고 마음속으로 기원도 해드렸다.


그리고 얼마 전 송년 모임에서 A교감 선생님을 만났다.


“교감 선생님, 올해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올해 학교 적응하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휴. 올해 정말 힘들었어. 교간이랑 교감은 받침 하나 차인데 왜 이렇게 힘드냐? 니은에서 미음으로 바뀌는데 정말 죽을 뻔했다야. 하하하하하.”


죽을 뻔했다는 선배님 앞에서 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났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그리고 속으로 혼자 개사를 해봤다.


‘교간이란 글자에 미음 받침 바꾸면 바로 교감 되는 장난 같은 발령장’


내년 3월 1일 자 교감 발령장을 기다리고 있는 교간님들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오늘도 쓸데없이 비장함.)

그리고 남은 2개월 더 알차게 행복하시기를 빌어본다.

(교감이 행복해야 교사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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