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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끌올


“당근!”

일요일에 집안 대청소를 마치고 나면 월요일부터는 나의 당근 마켓 앱이 바빠진다. 주말 내내 집을 뒤져 쓸데없는(이라고 하면 내 물건을 산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것 같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서 급히 말을 살짝 바꾸어본다.) 것 같은 물건들을 당근에 잔뜩 올려놓으면 핸드폰에서 ‘당근! 당근!’ 한다.


올리자마자 바로 팔리면 정말 기분이 좋다. 집도 깨끗해지고 돈도 벌고 1석 2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유난히 안 팔리는 녀석들이 있다. 사진이 별로라서 그런가 싶어서 사진을 수정을 해보기도 하고, 매력적인 가격이 아닌가 싶어 금액을 낮춰보기도 한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안되면 그다음엔 ‘끌어올리기’에 도전한다.

‘지금 가격을 낮추면 관심을 누른 6명의 이웃에게 알림이 가요.’

‘다음 끌어올리기는 2일 12시간 뒤에 할 수 있어요.’


끌어올리기는 재미있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하고 싶다고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룰이 있다. 강제로 물건들을 눈에 띄게 하는 이 끌어올리기를 보는 순간, 교실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덕분에 약간의 궁리 끝에 이 끌어올리기, 줄여 말하면 ‘끌올’ 시스템을 학급운영에 적용했다.

모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도하는 것이 담임교사의 역할이자 의무이겠으나, 매일 모든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매일 모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지 못하는 나를 채찍질하던 다소 잔인한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필요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나니 오히려 더 가벼워졌다.


끌올 시스템도 그중 하나이다. 끌올을 한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어떤 학생을 1순위로 둔다는 말이다. 즉 그날의 끌올 학생은 나의 1순위 관심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정신없는 교실이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오직 1명을 머릿속에 콕 박는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오늘의 끌올 학생을 떠올린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자극과 과업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때문에 끌올 학생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끌올 학생은 비교적 머릿속이 한가한 출근 시간에 떠올리는 것이 가장 좋다.


1학기 때에는 번호 순서대로 아이들을 끌올 한다. 1번부터 끝번호까지 모든 학생이 끌올을 당할(?) 수 있도록 배치한다. 끌올이 한 바퀴 돌아가면 반 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꽤나 쌓인다.


사실 학생들은 본인이 끌올인지 뭔지 전혀 모른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비밀 놀이이다. 아침에 등교할 때의 표정, 쉬는 시간에 함께하는 주변인, 점심 급식판을 비우는 열정 같은 것을 탐정처럼 꼼꼼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기록한다.


여기까지만 하고 싶은데 그다음 문제가 있다. 관찰하다 보면 분명히 질문이 생긴다. 아침 표정이 왜 그런지, 쉬는 시간에 왜 목소리가 높아졌는지, 왜 어떤 반찬은 남겼는지 궁금해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된다. 사실 끌올은 비밀스러운 탐정놀이에서 시작되지만 마무리는 간단한 대화나 상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대화를 해야지’, ‘상담을 해야지’ 하면 참 부담스럽다. 그러나 ‘끌올 해야지’, ‘비밀스러운 탐정놀이’를 해야지 하면 가볍고 재밌다.


2학기에는 끌올의 대상을 조금 추려본다. 유난히 말이 없거나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 위주로 집중 끌올을 한다.


2학기 끌올은 진짜 효과가 좋다. 아이들과 관계 형성도 되어 있는 데다가 적절한 피드백까지 해줄 수 있어서 집중 끌올하고 나면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보인다. 안 팔리던 물건을 고심 끝에 끌올 했는데 바로 팔게 되는 그 희열! 바로 그런 희열이 느껴진다!(다들 느낌 아시죠?)


오후에 교실에 홀로 앉아 수첩에 탐정처럼 끌올 후기를 적고 있노라면 오늘 관찰한 웃긴 일 때문에 한 번 웃고, 웃고 있는 내가 웃겨서 한 번 더 웃게 된다.


나는 매일 학교 마켓 끌올하러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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