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마스크를 쓰고 지낸 지도 어언 3년이 다 되어간다. 마스크가 없어서 약국에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야 했던 일들, 마스크를 조금이라도 내리면 얼른 올리라며 언성을 높였던 학생들의 실랑이 같은 지난 일상들이 하나둘씩 머릿속을 스쳐간다.
아직 마스크 착용이 전면 해제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코로나19 초기보다는 조금 여유로워진 방역수칙 덕분에 우리 반 장난꾸러기들은 슬슬 마스크의 용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해도 숨 안 쉬면서 마스크 올리는 건 괜찮지 않냐며 과장되게 숨을 참아버리는 그 아이들 앞에서 늘 할 말을 잃었다. 아슬아슬했던 아이들의 마스크 용도 찾기 놀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1. 체육 시간
체육관 입구에는 도어록이 설치되어 있다. 이럴 경우 보통 도어록 비밀번호는 교직원끼리만 공유를 한다. 학생들끼리 체육관에 입장하거나 외부인이 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교사들은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에 의식을 치른다. 일단 아이들에게 비밀번호가 유출되지 않도록 아이들을 멀찍이 세운다. 그리고 비밀번호판으로 다가가 그것을 우아하게 쓰다듬으며 도어록에게 ‘이제 곧 누를 거야’ 하는 신호를 보낸다. 그다음 혹시 모를 유출에 대비하여 손으로 비밀번호판을 가리면서 조심스럽게 숫자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누른다. 마지막으로 별표를 누르며 합격을 알리는 ‘띠로리’ 소리에 안도한다. 그제야 멀찍이 서 있었던 아이들은 위풍당당하게 체육관으로 입장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체육 시간이었다. 나 또한 고유한 의식을 치르기 위해 아이들을 멀찍이 세워놓고 비번을 누르려고 좌우를 살피고 있었다.
“얘들아 숨 쉬지 말고 마스크 올려!”
우리 반 장난꾸러기의 엉뚱한 명령에 아이들은 갑자기 한 마음이 되었다. 모두 눈까지 마스크를 올렸고 덕분에 드러난 귀염둥이들의 양 볼들은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복어가 되었다.
“얘들아! 장난치지 말고 마스크 얼른 내려!”
아이들은 복어가 된 채로 손으로 엑스를 만들면서 나에게 빨리 비밀번호를 누르라는 수신호를 보냈다.(대충 해석해 보자면 ‘쌤! 잔말 말고 빨리 비번 눌러욧!’)
“으이구 녀석들! 알겠다 알겠어!”
나는 혹시 복어 중에 사상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급히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로리!”
입장 허가를 알리는 경쾌한 도어록 알림음에 아이들은 마스크를 내리고 ‘휴우’했다.
“선생님, 저희 마스크 덕분에 비밀번호 못 봤어요. 잘했죠?”
“야! 이 녀석들아! 마스크 장난 좀 치지 마! 선생님 진짜 놀랬잖아!”
아이들에게 이렇게 호통을 쳤지만 사실, 단체로 마스크를 올린 아이들이 빵빵한 볼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어린이스러움’이 가득 찬 보송보송한 ‘어린이주머니’를 발견한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2. 아침 시간
“선생님 오늘 화장 안 했어요?”
순간 당황했다. 반사적으로 얼굴을 매만지며 거울을 찾았다. 앗! 아침에 정신없이 출근하다가 화장하는 것을 깜빡했다. 아줌마의 화장이라는 것이 뭐 그리 거창하겠냐만은 그래도 매일 화장하는 것을 잊지 않았던 나였기에 매우 당황했다. 가방에서 급히 화장품 파우치를 꺼내서 팩트를 찾고 있는데 대뜸 한 어린이의 외침이 들린다.
“야, 숨 쉬지 말고 마스크 올려! 선생님 빨리 화장하세요!”
평소 팩트를 한 열 번 두드리고 입술만 바르면 끝나는 간단한 화장을 즐기는 나였지만 아이들이 숨을 안 쉬고 있으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어차피 마스크를 순순히 내리지 않을 녀석들이었기에 나는 기네스북 신기록에 도전하는 도전자처럼 그야말로 ‘미션 화장’을 하고 말았다.
“얘들아! 선생님 다했어! 얼른 마스크 내리고 숨 쉬어!”
선생님의 변신 완료 소식에 아이들은 마스크를 내리고 또 ‘휴우’했다.
그 ‘휴우’는 선생님을 지켜주었다는 뿌듯함이었는지 아니면 선생님의 쌩얼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어쩐지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코로나19 중앙안전대책본부장님이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을 보셨다면 아마도 뒷목 잡고 쓰러지실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참에 사과의 말씀을 올려 본다.(갑자기?)
본부장님 죄송합니다. 그래도 어린 나이부터 마스크와 한 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영혼들의 울분이 낳은 소소한 장난을 부디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반은 방역 수칙을 충실히 따랐으며 아이들은 이 두 번의 에피소드 외에는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았습니다. 늘 애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힘내십시오.
훌륭한 중대본부장님께서는 어린 영혼들이 만들어 낸 마스크의 새로운 용도를 부디 너그러운 마음을 이해해주실 것이라 믿으며 황급히 이 글을 마무리해 본다.(선아부 후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