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아!



매년 학기 초에는 아이들과 반의 숫자를 넣어 우리 반 별명을 짓는다. 우리 반 숫자를 넣고 의미도 있어야 하니 아이들이 어려워하면서도 흥미로워하는 활동이다.


1반이면 제1 잘하는 우리(1등의 이미지를 팍팍 살린다.)

2반이면 2렇게나 멋지다니!(자아도취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3반이면 3성 전자 비켜!(1등 기업을 이겨보겠다고 한다.)


올해는 4학년 4반. 금기의 숫자 4가 2개나 들어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어럽쇼? 심지어 교실 위치도 4층이다! 이걸 어쩌나.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헤맬 때 슬며시 꺼내놓을 초안과 스토리텔링을 좀 만들어 두었다.(처음부터 보따리를 풀어놓는 건 하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푸는 건 중수, 제발 좀 보여달라고 애원할 때 푸는 건 고수)


먼저 그동안 내가 지도한 반들의 별명 리스트를 보여주었다. 이번엔 4반이니까 ‘4’를 넣어서 의미 있는 우리 반만의 별명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4고뭉치, 4주팔자, 4자우리.


호기롭게 달려든 아이들의 아이디어들이었다. 그러나 본인들도 썩 맘에 들지는 않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갑자기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교실을 가득 채웠던 팽팽한 도전 에너지가 점점 사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이 분위기 어떻게 좀 해봐.’라는 눈빛으로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았다.


후훗. 드디어 내가 준비한 보따리를 풀 시간이 왔군.


“얘들아, 나는 너희들이 서로 사랑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 의견은 ‘서로 4랑 하는 반’이란다. 어때?”


“좋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가 4학년 4반이니까 4를 하나 더 넣어서 ‘4로 4랑 하는 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보통 4라는 단어를 나쁘게 생각하잖아. 그런데 ‘이왕 4학년 4반이 된 거 숫자 4를 오히려 즐겨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야.”


“아! ‘오히려 좋아.’ 이런 거요?”


“응. 맞아. 우리는 삶에서 싫거나 피하는 게 오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이 살아보니까 그것보다는 오히려 그걸 즐기고 디딤돌로 활용하면 더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더라고. 그래서 너희들한테 4학년 4반을 즐기자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 올 한 해 4학년 4반을 즐기고 나면 너희들은 진짜 멋진 아이들이 되어 있을 거야!”


“대박!”


몇몇 아이들은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듯이 외쳤다.(물론 여전히 관심 없는 아이들도 있음.)


“선생님!”


수업 시간 내내 짧은 팔로 어색한 팔짱을 낀 채로 살짝 옆으로 비껴 앉아있었던 시크한 준우가 손을 들었다.


“응?”


혹시나 유치하다고 말할까 조마조마했지만 표정으로 들키지 않으려고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럼, ‘4로 4랑하4’는 어때요?”


“왜?”


이번에도 최대한 부드럽게 응수했다.


“이왕 4를 즐기기로 한 거 4를 한 번 더 넣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우리 교실이 4층이잖아요. 그러니까 4로 4랑하4.”


“와! 좋아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혹시 ‘반항하지는 않을까?’, ‘분위기를 흐리는 발언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내 걱정이 부끄러워졌다.


“와! 준우 멋진 생각이다. 성경에도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런 표현이 있잖아. 종교를 떠나서 우리 반 별명 끝에 4를 넣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 준우 덕분에 우리 반 별명이 더 고급져졌네! 선생님이 한 수 배웠다! 고마워!”


“4로 4랑하4”


드디어 우리 반 별명이 지어졌다. 난 우리 반 별명을 예쁘게 프린트에서 교실 여기저기에 붙였다. 교실에 4가 3개나 붙어 있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이후 우리 반에는 ‘오히려 좋아!’ 놀이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 망했어.”


이렇게 말하는 친구가 있으면 시크한 준우가 가서 말해준다.


“야! 이게 오히려 좋은 거야!”


“아, 짜증 나.”


“야! 짜장면 생각나지 않냐? 오히려 좋아!”


말도 안 되는 아재 개그도 갖다 붙여가며 아이들은 ‘오히려 좋아!’ 놀이를 한다.


사실 올해 학교로 옮기면서 걱정이 많았다. 이전 학교에 비해 다문화 학생 비율도 높고,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출퇴근 시간도 더 길어졌다.


그런데 순수한 이 아이들이 덕분에 매일 출근길이 즐겁다.


매일 아침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F”를 보면서 나는 혼자 생각한다.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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