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나는 맘스터치 선생님이야.”
매년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해주는 말이다. 아이들의 눈빛은 긴장에서 호기심으로 변한다.
“선생님은 왜 맘스터치 선생님일까?”
‘맘스터치’라는 단어에 아이들은 제각기 상상의 나라로 떠난다. 뇌세포 활성화 상태를 경험한 아이들의 표정은 금세 말랑말랑해진다. 아이들의 즐거운 상상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아서 그 이유를 최대한 천천히 가르쳐준다.
선생님이 맘스터치 햄버거 세트를 사줄 거라고 기대하는 아이(예능을 너무 많이 봤다.)
상상 속 맘스터치로 달려가서 싸이 버거를 시켜먹는 아이(먹방을 너무 많이 봤다.)
‘그래 오늘 점심은 맘스터치!’라고 메뉴를 정해버리는 아이(다큐를 너무 많이 봤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너무도 사랑스럽다. 그러나 첫날부터 사랑에 빠진 것을 쉽게 들켜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최대한 절제하고 그 이유를 매우 딱딱하게 설명해 준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너희의 보호자야. 다시 말해 엄마라는 말이지. 영어를 아는 친구들은 알겠지만 맘스터치는 결국 ‘엄마의 손맛’이라는 뜻이잖아. 그래서 선생님도 너희들에게 엄마의 손맛을 보여주겠다는 말이지.”
말랑말랑해진 아이들이 다시 굳어버린다. 안타깝게도 ‘엄마의 손맛’이라는 단어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체벌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아, 올해 망했다.’ 이런 식의 표정이 된다.
“선생님 때려요?”
“선생님 무서워요?”
‘깡’ 또는 ‘용기’가 있는 아이들은 애써 졸지(?) 않은 척하며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니.”
“그럼 왜 맘스터치예요?”
엄마의 손맛은 요리 솜씨도 아니고,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솜씨도 아니라고 설명해 준다.
“맘스터치라는 것은 엄마의 마음, 엄마의 지도, 엄마의 소통이라는 뜻이야. 나는 오늘 너희들을 낳았어. 그리고 앞으로 1년 동안 너희들을 잘 키워 줄 거야. 마치 엄마처럼. 엄마의 마음으로 엄마처럼 소통하고 지도할 거야.”
4학년에서 6학년 학생들, 소위 고학년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맘스터치가 선생님의 교육관 또는 교육철학 같은 것’이려니 하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나 1학년에서 3학년, 즉 저학년은 난리가 난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 집에 있어요!”
“선생님이 26명을 한꺼번에 어떻게 낳아요! 거짓말!”
피식 웃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자식들! 아직은 나를 학교 엄마로 인정하기가 어려운 모양이군. 그렇지만 미안하다. 너희들은 이미 내 자식들이 되었다! 이 자식들아! 이제 도망 못 간다! 하하하하하!’
이렇게 맘스터치 생활은 시작된다. 아이들이 뭘 하든 난 ‘맘스터치’다. 오직 엄마의 마음으로 내 길을 간다. 맘스터치는 매일 쌓인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를 만들어준다.
“민성이 오늘 생일이니까 밥 한 숟가락 더 먹어! 내가 너 낳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지?”
평소 편식이 심하고 잘 안 먹는 민성이한테 오늘은 맘스터치로 밥 한 숟가락 더 주었다.
“아. 싫어요.”
싫다고 하는데 몸은 꽈배기 상태이며 눈은 웃고 있다. 이 정도면 ‘맘스터치’가 먹힌다는 확신이 든다. 좋아. 작전 개시!
“선생님, 민성이 키 크려면 한 숟가락으로는 약해요. 두 숟가락 줘요.”
이번엔 다른 애들이 난리다. 위기의 민성이는 애들한테 조용히 하라며 ‘쉿 쉿’ 제스처를 취한다. 귀여운 소란이 지난 후 민성이에게 조용히 다가간다.
“민성아, 근데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알지? 생일 축하해.”
그날 민성이는 급식을 다 먹었다. 그리고 오후에 민성이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우리 민성이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급식지도도 감사해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전화를 끊고 조용한 교실을 지키고 있는 26개의 책상과 걸상들에게 외쳤다.
마! 봤나? 이것이 맘스터치의 힘이다. 마!
(부산사람 아님. 맘스터치 홍보대사 절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