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1교시에는 아이들과 주말에 있었던 일을 나눈다. 금식 후에 바로 밥을 먹을 수 없듯 주말을 보내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천천히 죽을 먹이는 마음으로 ‘주말 이야기’를 운영한다. (이것이 바로 죽 쑤는 수업!)
물론 ‘주말 이야기’ 수업을 이끌고 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안 그래도 월요병 때문에 힘든데 아침부터 모든 학생이 주말 이야기를 하라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내가 정말 독재자 같은 선생님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 반 모두가 발표해야 하는 규칙을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말하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이 있다. 또, 귀찮다는 듯이 ‘하루 종일 TV 봤어요’, ‘밥 먹었어요.’라고 대충 말하고 앉아버리는 아이도 있다.
그래도 나는 당황하지 않는다. ‘그때’를 기다리면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하루 종일 TV 봤다는 아이에게는 무슨 프로그램이었는지 누가 나왔는지 물어보고 다시 일어나서 이야기하도록 지도한다. 밥을 먹었다는 아이에게는 무슨 반찬이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집요하게 물어보고 다시 발표시킨다.
그리고 주말에 있었던 일 한 문장과 나의 생각 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한다. 있었던 일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나의 생각이나 느낌이 빠졌으니 꼭 말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재밌었어요.’,‘맛있었어요.’ 이렇게 적당히 말하고 앉는다. 그날은 넘어가지만 그다음 주에는 ‘재밌었어요.’,‘맛있었어요.’ 금지를 선포한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좌우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2-3주 지나 보면 아이들은 느낀다.
‘아. 우리 선생님이 이 시간엔 진심이다. 이것은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다.’(아이들 표현으로는 ‘빼박’)
어느새 아이들은 형식에 맞추어 발표한다. 오직 빨리 앉기 위해서.
그렇게 한 달쯤 지나면 아이들은 익숙해진다. 그리고 슬슬 잘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월요일 아침마다 등굣길에 ‘주말 이야기’에서 말할 내용을 준비하는 아이, 일기장에 써서 일기장을 멋지게 발표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이런 아이들을 불쏘시개로 활용한다. (얘들아 미안.)
일단 칭찬을 퍼붓는다. 큰 소리로 발표한 것 칭찬, 미리 말하기를 생각해 온 것도 칭찬. 일기장을 정성스럽게 써 온 것까지 칭찬. 나는 마치 칭찬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온 열정을 다해 칭찬을 쏟아낸다.
이렇게 운영하다 보면 월요일 1교시는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된다. 혹여 내가 다른 소리를 하면 아이들이 먼저 ‘선생님, 주말 이야기’해야죠!‘라며 성화다.
'주말 이야기'는 나같이 개그 욕심이 있는 학생을 계기로 무르익는다. 보통 개그 욕심이 있는 학생이 한 반에 한 명은 있다. 그런데 정말 재수가 좋지 않아서 한 명도 없는 해가 있었다. 그 해에는 내가 그 역할을 맡았었다.(그 당시 무척 주접스러운 선생님이었지만 인생이 그러하듯 '후회는 없다' 고 말하고 다닌다.)
올해의 개그욕심러(?)는 민혁이다. 민혁이의 개그는 나의 칭찬을 먹고 쑥쑥 성장했다.
“야, 민혁이 차례야. 조용히 해!”
아이들은 민혁이의 발표에 열광했고 민혁이 차례가 되면 교실은 숨죽여 민혁이에게 집중했다. 자신에게 욕하는 엄마나 괴롭히는 형 심지어 키우는 강아지 짖는 소리 등을 똑같이 성대모사하는 민혁이는 거의 1인극 수준의 발표를 했다. 매주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민혁이의 발표는 과장이 조금씩 섞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눈치채지 않은 듯 민혁이의 이야기에 큰 리액션을 보여줬다. 늘 더 보고 싶었기에.
어느 월요일에 민혁이가 결석했다. 아침부터 아이들은 무척 상심했다. 나는 '안 되겠다. 오늘은 마지막에 내가 좀 웃겨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뇌를 좀 풀고 있었다.
“저는 주말에 시크릿 쥬쥬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평소 말이 없고 표정이 굳어있는 남학생, 시후의 첫마디에 모두 뒤집어졌다. 시후의 얼굴은 자두처럼 빨개졌지만 발표는 이어졌다.
“사촌 동생과 놀아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치링치링 치리 링.”
민혁이가 없는 오늘을 시후가 꽉 채웠다. 나의 소중한 개그 기회는 뺏겼지만 뿌듯했다.
“브라보!”
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아이들에게 박수를 유도했다. 웃느라고 정신 못 차린 아이들이 박수 소리에 하나둘씩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다음 주부터 아이들은 '주말 이야기' 경쟁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마치 매주 '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처럼 열심히 소재를 찾았다. 그리고 월요일 1교시 무대가 열리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놀랍게도 매주 스타가 탄생했다. 내가 스타가 될 기회는 절대로 주지 않는 야속한 아이들이었다.
월요일 1교시. 아이들과 함께 떠들썩하게 말하고 듣기를 하노라면 이제는 한 시간이 금방 간다.
선생님이 뿌린 딱딱 가루가 가득했던 교실에 이제는 한 송이 두 송이 꽃이 핀다.
말하기 꽃.
나는 언제나 말하기 꽃이 피는 '그 때'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