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 작은 남자와 결혼했다
나는 나보다 키 작은 남자와 결혼했다.
우리 남편은 나보다 키가 작다.
대학교 때 재미 삼아 사주카페에 가서 사주를 보았는데
내 사주에 남자는
키 작고 못생기고 자존심 센 남자를 만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내내 얼마나 씩씩거리며 화를 냈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사주카페에 계실 분이 아닌 거 같단 생각도 든다 ㅋㅋ
친구들에게 처음 그를 소개하고 나면 반응은 다 똑같았다.
'연애만 하다 끝낼 거지?'
'뽀뽀는 어떻게 해?'
'어떻게 안겨? 나는 와락 안기는 게 좋더라'
'너 저 사람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 등등
모두 똑같은 걱정을 해주던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물론 그의 키가 컸으면 하고 바라었던 순간들은 있다.
그날의 코디에 맞춰 하이힐을 신고 싶다던가
친구들의 말처럼 가슴팍에 안겨보고 싶을 때
하늘을 보듯 그를 바라보고 싶을 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그럴 때도 있었지만
힐 대신에 플랫슈즈를 신으면 발이 편해 좋았고
그가 에스컬레이터나 계단 한 칸만큼 올라가면
안길 때도 바라볼 때도 예전에 그가 컸으면 하고 들었던 마음들은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할까?
이렇게 콩깍지가 씌는 건 외모나 키보다 더 중요한 마음이 닿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의 젊은 날 몸과 마음이 힘든 순간이 있었다.
사랑하는 할머니가 갑자기 위중하시어 중환자실에 계셨을 때
3주 동안 살 10kg이 빠졌을 만큼 마음이 아주 힘든 시기였다.
외식업 같은 직장을 다닌 우리,
예전부터 그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무심했다.
스치듯 인사만 건네다 어느 날 얼굴이 반쪽인 날 보고 그가 밥을 먹었냐 물었다.
안 먹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뚝딱뚝딱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하는 도중이라 먹기 어려워 처음엔 거절했지만
사람이 먹어야 기운도 차리고
일도 병간호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해낼 수 있다고
자신이 내가 할 일을 해줄 테니 밥을 먹으라고
내가 식사하는 동안 아무도 건들지 말라고 목소리 내는 그가 참 고마웠다.
식사할 공간도 시간도 맛난 밥도 다 만들어준 그가 고마워서 한 술 떴다.
그때의 김치볶음밥은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김치볶음밥 중 최고로 맛있는 김치볶음밥이었다.
나는 밥을 먹고 기운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해 나는 사랑하는 할머니 손을 놓아드렸고
그해 그는 사랑하는 내 사람이 되었다.
키 작은 남자를 만난 나를 모두 한 목소리로 걱정해준 친구들아
아직도 날 걱정한다면 걱정은 접어두기를 바란다.
키가 작다고 다 작은 건 아니다.
앗...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던가?
각자 알아서 생각할 일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는 키는 작아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은 마음을 가진
내겐 거인인 남자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