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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윤미 이루리 Jul 31. 2022

안비밀 일기장

나는 키 작은 남자와 결혼했다


나는 나보다 키 작은 남자와 결혼했다.

우리 남편은 나보다 키가 작다.

대학교 때 재미 삼아 사주카페에 가서 사주를 보았는데

내 사주에 남자는

키 작고 못생기고 자존심 센 남자를 만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내내 얼마나 씩씩거리며 화를 냈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사주카페에 계실 분이 아닌 거 같단 생각도 든다 ㅋㅋ


친구들에게 처음 그를 소개하고 나면 반응은 다 똑같았다.

'연애만 하다 끝낼 거지?'

'뽀뽀는 어떻게 해?'

'어떻게 안겨? 나는 와락 안기는 게 좋더라'

'너 저 사람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 등등

모두 똑같은 걱정을 해주던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물론 그의 키가 컸으면 하고 바라었던 순간들은 있다.

그날의 코디에 맞춰 하이힐을 신고 싶다던가

친구들의 말처럼 가슴팍에 안겨보고 싶을 때

하늘을 보듯 그를 바라보고 싶을 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그럴 때도 있었지만

힐 대신에 플랫슈즈를 신으면 발이 편해 좋았고

그가 에스컬레이터나 계단 한 칸만큼 올라가면

안길 때도 바라볼 때도 예전에 그가 컸으면 하고 들었던 마음들은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할까?

이렇게 콩깍지가 씌는 건 외모나 키보다 더 중요한 마음이 닿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의 젊은 날 몸과 마음이 힘든 순간이 있었다.

사랑하는 할머니가 갑자기 위중하시어 중환자실에 계셨을 때

3주 동안 살 10kg이 빠졌을 만큼 마음이 아주 힘든 시기였다.

외식업 같은 직장을 다닌 우리,

예전부터 그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무심했다.

스치듯 인사만 건네다 어느 날 얼굴이 반쪽인 날 보고 그가 밥을 먹었냐 물었다.

안 먹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뚝딱뚝딱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하는 도중이라 먹기 어려워 처음엔 거절했지만

사람이 먹어야 기운도 차리고

일도 병간호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해낼 수 있다고

자신이 내가 할 일을 해줄 테니 밥을 먹으라고

내가 식사하는 동안 아무도 건들지 말라고 목소리 내는 그가 참 고마웠다.

식사할 공간도 시간도 맛난 밥도 다 만들어준 그가 고마워서 한 술 떴다.

그때의 김치볶음밥은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김치볶음밥 중 최고로 맛있는 김치볶음밥이었다.

나는 밥을 먹고 기운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해 나는 사랑하는 할머니 손을 놓아드렸고

그해 그는 사랑하는 내 사람이 되었다.


키 작은 남자를 만난 나를 모두 한 목소리로 걱정해준 친구들아

아직도 날 걱정한다면 걱정은 접어두기를 바란다.

키가 작다고 다 작은 건 아니다.

앗...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던가?

각자 알아서 생각할 일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는 키는 작아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은 마음을 가진

내겐 거인인 남자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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