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일해봤다고는 하지만 처음과 뭐가 크게 달라졌으랴. 스시를 만드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고, 메뉴 이름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가격표를 출력할 때마다 하나하나 물어야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나의 반복되는 질문에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흥쾌히 답해주고, 어려워하는 것은 기꺼이 도와주었다. 내가 높은 선반에서 그릇을 꺼내려고 팔을 뻗으면 얼굴 옆에도 눈이 달렸는지 귀신 같이 알고 꺼내주었다. 20인분 밥이 다 되면 전기밥솥에서 내솥을 꺼내야 했는데 무거워서 버둥거리면 자기가 하겠다며 맨손으로 후딱 꺼내주었다. 천사가 따로없지 않은가.
이쯤 되니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어느 나라에서 왔을까? 그에 대한 궁금증에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네팔에서 왔고 독일에 온지 3년 정도 되었다는 수실. 자기 이름 Sushil에서 마지막 알파벳 L만 빼면 Sushi(스시)가 된다고 했다. 어쩜 직장에 딱 어울리는 이름을 가졌을까? 하지만 정작 네팔은 내륙지역이어서 바다가 없고, 그런 이유로 생선은 거의 먹어보지 못 했으며 날생선으로 만드는 스시는 독일에 와서 처음 봤다고 했다. 어떻게하다 스시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신기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네팔 사람들은 분명 심성이 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산이 마을을 끌어안고 푸른 초원을 바라보며 바다처럼 푸르고 맑은 하늘 아래 사는 네팔인들은 수실처럼 선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네팔은 나에게 각인되었다.
(네팔, 사진출처 : pixabay)
그 후 같이 일하게 되는 동료들의 성품이 그 나라의 국민성으로 각인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지런하다 못 해 극성인 베트남인들, 한국에 관심이 많다며 한국 영화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쏟아내는 인도네시아 히잡여인, 말수가 적고 차분한 일본인, 수다스럽고 흥이 많은 태국인. 장점도 단점도 각양각색인 각 나라의 동료들을 보노라면 그들이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것도 아닌데 그들을 통해 그 나라의 국민성을 가늠해보게 된다.
그쯤되니 그들에게 한국인은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해졌다. 단박에 한국에 와 있는 많은 외국인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마음 아픈 사연들이 떠오른다. 한국관광객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추대를 부렸다는 어느 기사가 떠오른다. 어린 여자 아이들을 희롱했다는 낯뜨거운 이야기도 기억난다. 어떻게 된 일인지 미담보다는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니 큰 일이다.
내가 그들에게 미담이 되어야겠다, 사명감마저 든다. 그들이 나를 통해 한국을 바라볼 거라는 생각에 마치 한국 대표선수라도 된거마냥 행동거지에 조심하게 된다. 그래, 애국이 별거냐? 외국인 동료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면 그게 애국이지. 찾았냐는 말을 '예쁜데' 로 알아먹는 엉뚱한 한국인이지만 성실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는 한국인으로 애국하면 되지. 그래, 나는 한국대표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