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선수반 생활이 시작되면서 드디어 아이의 포지션이 정해졌다.
다른 리틀야구단에서는 아이들이 여러 포지션을 두루 체험하며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리틀야구단의 사정은 달랐다.
아이들이 워낙 적었고, 민이가 “포수를 하고 싶다”라고 말한 순간, 그 자리의 주인은 자연스레 정해졌다.
포지션이 정해지자, 그에 맞는 장비들이 하나둘 필요해졌다.
기본적인 포수 장비는 구단에서 제공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개인이 준비해야 했다.
포수 글러브, 헬멧, 베팅장갑, 주루장갑, 암가드, 풋가드…, 게다가 혹시나 다른 포지션으로 바뀔 경우를 대비해 야수용 글러브까지 갖춰야 했다.
그중 아이가 가장 먼저 고른 것은 포수 글러브였다.
“원에이티가 제일 좋아요.”
아이는 단호했다.
그 브랜드는 포수들이 제일 많이 쓰고 있고 대중화된 브랜드라는 거였다.
남편이 인터넷으로 가격을 찾아봤을 때, 50만 원 가까이 되는 숫자에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며칠간 사이트를 뒤지고, 판매처에 직접 문의까지 하더니 결국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며 구입을 결정했다.
베팅연습용 장갑은 다섯 켤레에 25만 원, 헬멧은 검투사 보호대가 달린 제품으로 8만 원, 암가드와 풋가드는 각각 쿠팡에서 약 3만 원씩에 구입했다.
장비 가방은 다행히 리틀 선배가 남겨둔 걸 받아 사용했다.
그 가방 안에 새 장비들을 하나씩 넣을 때마다 아이의 얼굴에는 설렘이 번졌다.
가방을 메고 서 있는 아이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말 ‘선수’가 된 것만 같았다.
글러브의 냄새, 헬멧의 묵직한 감촉, 그리고 그 안에서 반짝이는 아이의 눈빛까지….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지만, 왠지 자랑스러웠다.
방학이 끝나면서 훈련 일정은 한층 더 빡빡해졌다.
이제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리틀야구단 차량이 학교 앞으로 와서 아이를 태우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밤 8시쯤,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이면 아이를 태운 차량이 다시 집 앞에 멈췄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매일 저녁, 흙냄새가 묻은 운동복과 함께 돌아오는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안도와 걱정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막 ‘야구라는 세계’의 문턱을 넘어선 아이, 그리고 그 문 앞에서 서성이는 나…,
우리 둘의 시작은 그렇게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