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로 들어갈 무렵,
리틀야구단에서는 중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의 ‘납회식’이 열렸다.
장소는 동네 삼겹살집.
6명의 선수반 중 세 명이 졸업하면 이제 팀에는 세 명만 남는다.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자리였지만 내 마음은 축하보다 걱정이 앞섰다.
팀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든 이후의 운영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납회식은 비교적 단순했다.
납회식 현수막을 걸고, “중학교 가서도 잘해라”는 격려사, 그리고 30만 원 상당의 상품권 전달.
지금은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진학한 졸업생 부모와 선수들도 참석해 작은 축제처럼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모습은 따뜻해 보였지만, 나는 그 안에서 또 다른 질문을 품게 되었다.
'1학기가 아닌 왜? 2학기에 진학을 할까?'
그해 Y리틀야구단의 회장을 맡게 된 D군 아버지에게 이 의문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왜 중학교를 1학기부터 가지 않고 2학기에 가나요?”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리틀구단 운영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면 저학년 때는 경기 출전이 어렵기 때문에 1학기 동안 리틀에서 최대한 많은 시합을 뛰고 2학기에 학교로 합류하는 것이 아이들 실력 향상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면 그럴듯했다.
경기를 많이 뛰면 경험이 쌓이고, 경험은 곧 실력이 된다는 논리.
하지만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경기 경험이 전부일까?'
물론 경기 경험은 중요하다.
실전은 훈련과 다른 긴장과 판단을 요구한다.
하지만 유소년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경기 수가 아니라 기본기, 체력, 기술 숙련, 그리고 학업과 생활의 균형이다. 특히 성장기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경기와 이동은 신체적 피로뿐 아니라 정서적 부담도 함께 남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1학기를 통째로 비운 뒤 2학기에 합류하는 것’이 과연 아이에게 최선인가 하는 점이다.
중학교 1학기는 새로운 친구,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규칙을 배우는 시기다.
관계의 기초가 만들어지고 교실 안의 작은 질서가 자리 잡는다.
그 시기를 건너뛰고 이미 공동체가 형성된 2학기에 들어간다면 아이는 그 안에서 어떤 위치에 서게 될까?
특히 예민하고 적응에 시간이 필요한 아이라면 그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함께 시작하는 것과 중간에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운영을 위한 선택인가? 아이를 위한 선택인가?'
이 선택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구단 운영을 위한 구조적 필요인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선수 수가 줄어드는 시점,
시합 출전을 위해 인원이 필요한 상황.
운영을 유지하기 위한 논리가
‘아이의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모든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 최선이라 믿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묻고 싶다.
경기 경험 몇 번이 아이의 학교 적응과 또래 관계 형성보다 더 우선일 수 있을까?
실력 향상이란? 단순히 시합 횟수로 측정되는 것일까?
납회식 자리에서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또 하나의 질문이 자라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아이의 미래를 위해 선택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구조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