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by 민하

“언니, 많이 바빠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인연을 이어 온 Y군 엄마의 전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응, 그렇게 바쁘진 않아. 왜?”

“시간 내서라도 주말에는 한 번 나와보는 게 어때요? 평일은 힘들더라도…, 아이 훈련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순간 멈칫했다.

‘무슨 일이 있나?’

Y리틀야구단이지만 우리는 우리 지역에서 훈련하지 않았다.
선수 수가 부족해 N지역의 N리틀야구단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었고, 거리도 멀고 대중교통편이 좋지 않아 자주 가보지는 못했다.

괜히 의미심장한 말처럼 느껴져 그 주말, 아이 아빠 대신 Y군 엄마 차를 얻어 타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에 도착하니 두 명의 감독이 그라운드에 서 있었다.

먼저 인사를 했다.

우리 구단인 Y리틀야구단 감독은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오셨어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N리틀야구단 감독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순간 내가 인사를 제대로 못 했나 싶었다.

못 봤을 수도 있지, 하고 넘겼다.

하지만 그날 훈련이 이어질수록 그건 착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훈련은 사실상 한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두 감독 모두 그 아이의 수비, 타격, 주루를 번갈아가며 직접 지도했다.

폼을 잡아주고, 반복해서 던져주고, 실수하면 다시 설명해 주었다.

농담도 섞어가며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그 아이는 체력도, 순발력도, 타고난 감각도 뛰어나 눈에 띄는 아이였다.

반면 우리 아이는 그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사실 우리 아이는 체력도, 재능도 특별히 타고난 아이는 아니었다.

어릴 땐 키가 큰 편이라 “잘 크겠지”라고 생각했지만,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은 키가 쑥 자라고 어깨가 넓어졌다.
타구 속도도, 송구 힘도 달라졌다.
성격마저 단단해졌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몸에 머물러 있었다.
성장은 느렸고, 힘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 차이는 훈련장에서 더 선명하게 보였다.


훈련이 끝나갈 무렵 Y군이 감독과 따로 남았다.


“레슨 받아야 돼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레슨?

훈련이 끝난 뒤 감독에게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개인 레슨을 한다는 말이었다.

Y군은 10회에 50만 원의 비용을 낸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식 훈련을 함께 하고 있는데, 왜 다시 돈을 내고 개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걸까?

더 이상한 건 우리에게는 그 레슨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제안도, 설명도, 선택권도 없었다.

굳이 우리가 먼저 묻고 싶지도 않았지만.
하지만 그날 분명히 느꼈다.

레슨을 받는 아이와 받지 않는 아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훈련 중 집중도, 세세한 코칭의 양, 경기에서의 기회. 모든 것이 조금씩 달랐다.


그날 훈련장을 나서며 Y군 엄마의 전화가 떠올랐다.


“한 번쯤은 직접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차별은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다.
조금 더 설명해 주고, 조금 더 반복해 주고, 조금 더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서서히 벌어진다.

그리고 그 차이는 결국 실력 차이로 굳어버린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아이의 노력만으로 승부하는 세계 안에 있는 걸까?
아니면 노력 외의 다른 조건들이 이미 작동하고 있는 세계에 들어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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