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은 이곳에 왜 왔을까? 그리고 이곳에서 뭘 본 걸까? 왜 기록만 남기고 사라진 걸까?’
캠코더를 잡으려는 순간, 등 뒤에서 기척이 들렸다.
발소리 같았다.
뒤를 돌아보았을 땐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뿐이었다. 그 바람에 마당에 있던 비닐 조각이 날렸다.
시선이 닿은 그 비닐 너머로 어렴풋이 무언가가 보였다.
하얀 천. 미주는 서서히 그 천으로 다가갔다.
꿈속에서처럼 천천히 미주를 둘러 쌀 듯 바람에 흔들려 다가오는 하얀 천, 그리고 흔들리는 천 사이로 보이는 여자의 형체. 잡으려고 뛰어가던 미주는 갑자기 멈춰 숨도 쉬지 않은 채 그림자를 응시했다.
하얀 천이 바람에 더 젖혀지자 그림자는 해무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바람이 그치자 해무가 천천히 걷히기 시작했다.
완전히 사라지자, 그녀가 서 있는 곳은 그녀의 꿈속처럼 절벽 위였다.
이번엔 주저앉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미주는 서둘러 숙소 문을 열고 들어와 젖은 비옷을 급하게 벗어 의자에 걸쳤다.
바닥에 둔 우산은 여전히 마을에서 묻은 해무 냄새를 품고 있었다.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 노란 방수 케이스와 캠코더를 올려두고 노려보았다.
“서준아…, 대체 뭘 본 거야.”
미주는 숨을 고르고 캠코더를 손에 들고 전원을 눌렀다. 캠코더는 작고 불안정한 기계음과 함께 화면이 켜졌다. 작은 모니터 속 화면에는 서준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 영상이 플레이되었다. 잔뜩 신난 표정으로 콧노래도 부르며 기대감이 가득했다.
미주는 빠르게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화면은 어두운 하늘로 바뀌었고 바닷바람 소리가 마이크에 섞여 잡음처럼 깔렸다.
「2024. 6. 03 / 오후 6:39」
어두운 하늘을 비추던 화면은 흰여울마을 해안 길 터널 입구 쪽 어두운 실루엣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은 누구 하나 삼킬 것 같은 어둠을 뿜어내고 있었다.
카메라는 불안정하게 흔들렸고 서준의 숨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오늘은 해무가 너무 심한데…. 여긴 항상 이 시기에 해무가 이렇게 생기는 건가?”
서준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리고 화면은 여기, 저기를 비추고 있었다. 순간 터널 입구 옆 바닷가 쪽에서 무언가 희미하게 움직였고 화면은 줌 인으로 변해 그곳을 자세히 비추기 시작했다.
서준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해무가 물결처럼 갈라지더니, 터널 입구 쪽 난간 가까이에 흰 옷자락 같은 형체가 걸쳐 있었다.
“저기…, 누구세요?”
서준은 작게 중얼거리며 손전등 불빛을 비추었다.
카메라는 손전등 불빛을 움직여 형체를 찾기 시작하자 흰 그림자는 터널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 사람, 사람 맞아?”
서준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리고 영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준의 숨소리는 점점 가빠졌다.
미주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미주의 손가락은 빠르게 캠코더 버튼을 두드렸다.
「2024. 6. 03 / 오후 6:42」
화면은 터널 입구를 비추었다. 서준은 터널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 손전등 불빛이 켜지더니 불빛은 암흑 같은 터널 입구를 비추며 서서히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손전등에 잠깐 씩 비치는 벽면은 낡은 타일과 물 자욱이 번져있어 음산했다.
불빛이 여기저기를 비추자 카메라 화면도 흔들렸다. 서준은 한발 씩 앞으로 나갔다. 앞은 전혀 보이지 않고 손전등 불빛만 여기저기 화면과 함께 울렁거렸다.
순간순간 렌즈 앞으로 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의 얼굴 같은 벽면들이 비추어질 때는 오싹 해 졌다.
그때, 카메라 너머로 무언가 스치는 듯 웃음소리가 들렸다. 서준은 숨을 멈춘 듯 화면도 같이 멈춰졌다.
그다음 순간, 흰 그림자가 저 멀리 터널 안쪽에서 흔들렸다.
“거기 있죠? 잠깐만요!”
서준의 목소리는 다급해졌다. 화면도 덩달아 급하게 움직였다. 서준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소리, 거친 숨소리 그리고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들이 같이 섞여 있었다.
미주는 숨이 멎는 것 같았지만 캠코더를 멈출 수가 없었다.
「2024. 6. 03 / 오후 6:45」
영상은 마지막으로 터널 끝 바다로 나가는 작은 출구 쪽을 비췄다. 그곳에는 흰 해무 속으로 하얀 천이 나부끼고 있었다. 미주는 화면을 확대해 그 천을 자세히 보았다. 그 천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이 잡혔다. 멀리서 비치는 바다 배들의 불빛과 함께, 하지만 화면은 그 순간 갑자기 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