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날 Jan 17. 2023

꾸러가, 산책하자!

외로움의 아이러니

되도록 매일,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반려견 꾸러기와 산책을 나선다. 가끔 우리는 매번 가는 길 대신 새로운 산책코스를 찾아 모험을 해보기로 한다. 빡빡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작은 일탈이자 소소한 즐거움이다.


한 번은 무작정 꾸러기가 이끄는 데로 따라가 보았는데 이 녀석은 기특하게도 집 근처 작은 도서관 뒤편에 위치한 숨겨진 산책로를 찾아냈다. 사색의 길이라고 도서관에서 이름 붙인 길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듯 잡초가 무성했다. 잡초와 억새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그저 꾸러기가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가 보니, 안쪽으로 작은 정원과 흔들 그네의자가 숨어있었다.


꾸러가, 심봤다!


햇살이 비치는 이 작은 정원을 처음 발견했을 때,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 몽환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토끼굴에 빠진 앨리스가 어두운 복도에서 바라보았던 정원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렇게나 멋진 곳이 주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꾸러기와 사색의 길을 찾을 때마다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심지어 울타리까지 쳐 저 있어 꾸러기의 가슴줄을 풀어줄 수도 있다. 정말 제대로 심봤다.


신이 나서 뛰어다니며 이곳저곳 냄새를 맡는 꾸러기를 보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스스로 찾아낸 새 산책로가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언제까지고 나와 꾸러기만의 비밀 아지트로 남아주길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이겠지…?


누구에게나 마음에 안정을 주는 공간이 필요한 법이다. 사색의 길 뒤편에 위치한 그네의자는 이제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만의 안식처가 되었다. 물론 집이 주는 아늑함에 비할 바 아니겠으나,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남편위주로 맞춰져 있는 우리 집은 당분간은 내가 원하는 색으로 채워가기 어려워진 것 같다. 꾸러기 덕분에 멋진 아지트가 생겼으니 이 기특한 녀석을 더 살뜰히 챙겨보기로 한다.


꾸러기가 자유롭게 정원을 탐색하는 동안 흔들 그네의자에 앉아 가만히 햇살을 즐겨본다. 그러고는 어느새 옆에  앉아있는 꾸러기에게   시끄러운 얘기들을 털어놓는다. 알아듣기라도 하는   녀석은  무릎에 턱을 받치고 한숨을 내뱉곤 한다. 그렇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저 가볍기만 하다.




결혼 후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소방관을 남편으로 둔 나는 그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남편의 특이한 근무 구조덕에 나는 이틀에 한 번꼴로 혼자만의 시간을 원 없이 보낼 수 있었으니까. 남편이 쓰러진 후에야 그 친구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이 년간 홀로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사라지면서 나는 점점 더 외로워졌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가히 소울메이트라 할만한 친구들에게도 나라는 사람을 완벽히 보여주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공허함은 온전한 내 모습 그대로를 이해받지 못하는데서 찾아오는 외로움이 아닐까?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진정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그저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산책을 갈 시간이 되었나 보다. 동물의 육감이란! 남편옆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내 발밑에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는 꾸러기와 눈이 마주쳤다.


꾸러가, 산책 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