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날 Jan 20. 2023

거칠고 못생긴 손

부끄러워해서 미안해

회의실로 급하게 자리를 옮기다가 잠깐 무게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너무 많은 짐을 한 번에 옮기려 한 탓이다. 커피잔과 노트북은 가까스로 살려냈지만 지켜내지 못한 핸드폰과 마우스, 노트와 펜들이 요란스럽게 바닥에 나뒹굴었다. 얼른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하는데 불쑥 예쁜 손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근처에 있던 동료직원이 어느새 다가와서 물건을 집어준 것이다.


"어머, 네일아트 너무 예뻐요!"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 어째 네일아트 칭찬으로 나와버렸다. 허둥지둥 다시 고맙다고 말하고 회의실에 들어가 앉았다.


문득  손을 바라보았다.  관리를   언제더라... 뭉툭하게 자른 손톱과 여기저기 올라온 큐티클이 보인다. 이곳저곳 긁혀서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도, 손목에 불룩 튀어나와 있는 결절종도 괜히  도드라져 보인다. 미국에 있을 때도 차로 꼬박 30분을 달려 네일아트를 받았던 나인데... 누가 보기라도 할까  슬며시 손을 테이블 밑으로 숨기고 말았다. 회의시간 내내 괜히 만지작 거렸던  손은 거칠기도  거칠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와 가방을 뒤졌다. 그리곤 핸드크림이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핸드크림은 물론 그 어떤 화장품도 거울도 없다. 언젠가부터 내 가방에는 늘 보이던 화장품 파우치가 사라졌다. 그 빈자리는 남편의 병원 환자 카드들과 진료 후 설명서, 장애인 등록증이 담긴 파우치가 대신하고 있었다.


괜히 울적한 마음이 들어 퇴근시간에 맞춰 예전에 다니던 네일샵을 예약했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들어간다고 큰일 나지 않을 테니 기분전환을 해야겠다 싶었다.


막 퇴근을 하려는데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 저녁 뭐 먹어?"


오늘 남편이 기분이 좋구나! 문자만 봐도 알 수 있다. 불편한 손으로 물음표까지 찍은 걸 보면 오늘 그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은 게 틀림없다. 그리고 느낌적인 느낌으로 치킨이 먹고 싶다는 그의 행간까지 읽어내는 나는 꽤 괜찮은 와이프임이 틀림없다.


"치킨 사갈까?"

"ㅇㅇ"


네일샵 대신 치킨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남편의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하니 내 못생긴 손 따위는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날 밤 남편의 발을 주물러주며 다시 내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참 고마운 손이다. 이 손으로 몸이 불편한 남편을 일으켜 세우고 안아줄 수 있으니... 참 자랑스러운 손이다. 이 손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돈을 벌고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으니... 두 손을 맞잡고 얼굴로 가져가 가만히 뺨에 대어 본다.


'버텨줘서 고마워, 그리고 부끄러워해서 미안.'


그날 나는 남편의 손 마사지기를 빌려 썼다. 그리고 핸드크림을 가방에 넣었다. 아마 다시 네일샵을 찾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내 못생긴 손에 핸드크림정도는 발라주고 나라도 예뻐해 주려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