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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줍음 Aug 20. 2020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중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이에요!

우리집 삼남매의 엄마 이야기

나는 꽤 열심히 사는 편이다. 사실 이 '열심히'라는 표현은 내가 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표현하곤 한다. 중요한건 딸의 입장에서 보아도 내가 엄청 열심히 사는 엄마라는 점이다. 실제로 작년에 스무살이던 큰 딸이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중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에요."


작년 연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어느핸가 강의를 듣고와서부터 해마다 연말이면 가족들을 졸라서 하고싶어하는 행사가 있다. 처음엔 남편도 아이들도 얼떨결에 어색해하면서 따라줬는데.. 다들 쑥스럽고 귀찮아하면서 잘 안 하려고 핑계들을 대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들이 이제는 지들도 어느정도 컸다고 더 안하려고 들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방법이 좀 재미있게 형식을 갖추어 초대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좀 재미있으면서 가족들도 좀 제대로 초대받았다는 기분 좋은 느낌과 함께 가족모임이라는 무게감을 살짝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런 형식과 약속이 없었다면 남편과 나는 아마도 각자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와 함께 어느 술집에선가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올것이 뻔했다.


적어도 연말이니까, 새해가 다가오니까, 술집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과 추억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2019년 가족송년회 초대장'을 만들어 가족 단톡방에 초대했다. 나름대로 아이들의 호기심과 호감을 자극할만한 메뉴선택권을 주고 내가 가장 원하는 발표순서는 자연스런 식순에 포함시키는 대신 현금과 선물을 암시했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남편도 신선했는지, 내 노력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의 이벤트에 부응해주며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만들어줬다. 대학생이 된 큰 딸과 고3이 될 둘째 딸, 마지막 초등학년을 보내고 있는 막내 아들까지 피아노 연주를 몇곡이나 할 수 있을지 서로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한 곡당 얼마를 줄거냐고 내게 묻기도 했다. 올해의 뉴스는 다들 할말이 없다며, 생략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10개가 어려우면 5개씩만이라도 준비하도록 한발 양보해주었다. 하지만 예외는 없음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연말 송년회는 착착 진행이 되었다. 아이들 먹고싶다는 피자, 치킨, 족발을 모두 주문해서 한상에 거하게 차려놓고 성인가족을 위한 와인과 맥주, 미성년자를 위한 탄산음료수와 주스도 준비했다. 모두가 만족스럽고 편안하게 집안에서 즐기는 우리끼리의 만찬이었다.


내가 제일 먼저 '올해의 10대뉴스'와 '2020년 버킷리스트'를 발표했다. 물론 나는 문서로 작성해서 출력한 것을 들고 발표했다. 가족들 모두 박수와 함께 한 해동안 열심히 산 나를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고 진심으로 격려해주었다. 내가 하고나니 남편이 순순히 자기발표를 했다. 남편 역시 우리의 칭찬과 인정의 박수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처음 성인이 되어 겪은 좌충우돌 대학생 큰딸과 예비 고3 둘째, 예비중학생 막내의 순서로 이어졌다.


그런데 다들 표정을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식순이었다. 2019년 한 해동안 자기에게 의미있었던 일들, 가족에게 알리고 싶었던 이야기들, 한번쯤 되새겨보고 꺼내어보니 다들 함께 공감해주고, 웃어주고.. 뭔지 모를 묘한 행복감과 충만감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다섯식구가 열흘동안 함께 했던 유럽여행은 모든 가족이 올해의 뉴스로 꼽았고, 아릅답고 특별한 우리가족만의 추억으로 장기 저장되고 있었다.  


작정하고 아이들 용돈을 주기위한 자리였으므로, 칭찬거리만 생기면 빌미로 용돈을 투척했다. 둘째와 막내는 제법 용돈을 두둑히 받았는데, 큰 딸만은 용돈받기를 거부했다. 엄마아빠로부터 이미 충분히 용돈을 받고 있으며 당연한 일에 대해 더이상의 용돈을 거부하였다. 워낙에 검소하고 정직하고 강직한 성품의 아이였다.


그런 큰 딸이 내게 한 말이었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열심히 사는 중 한 사람이라고'

그러자 옆에 있던 둘째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감사한 일이었다.

내 자식들에게, 내 딸들에게 내가 그런 모습의 엄마라니...


둘째 딸은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도 내가 집에 있기를 바랐었다. 혼자 집에 있는 걸 무서워하고, 집에 돌아왔을때 내가 반겨주고 간식 챙겨주기를 바랐었다. 그리고 큰 딸도 물었었다. 엄마 지금 꼭 일해야 하느냐고..

그 뒤론 더이상 아이들에게 엄마가 집에 있는게 좋은지, 없어도 괜찮은지 묻을수가 없었다. 아니 묻지 않았다. 난 어차피 계속 일할거였으니까..


몇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큰 딸이 '엄마 그때 일 하기 정말 잘한거 같다'고 말해주었을 때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죄책감이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일하느라 공부하느라 늘 아이들과 남편은 뒷전이었고, 집안 일도 뒷전이었다. 늘 내 성장과 목표를 향해 달리느라 열정많은 직업인이었지만, 가족에게는 항상 바쁘고 이기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 딸들이 내게 말한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정말 멋있고 자랑스럽다' 고..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뿐이었는데.. 내가 좋아서, 내 마음이 시켜서,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서 한 것 뿐이었는데..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인정해줘서 참 다행이다.


"고맙다, 얘들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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