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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줍음 Dec 05. 2020

고3 딸에게 엄마가 쓰는 편지

수능 끝나고 면접 전 날

은지야, 이제 와 고백할게.

사실은 엄마가 은지에게 미안한 게 참 많았단다.


너 중복 더위에 태어나고 그 해 여름 엄마가 참 많이 더웠단다. 땀 냄새, 젖 냄새 폴폴 풍기는 엄마 냄새를 싫어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무더운 여름이었다. 너는 또 어찌나 밤마다 잠도 안 자고 보채는지... 엄마가 너를 거실에 혼자 재워두고 안방에 들어와 홀가분하게 잘 잤던 밤이 있었다. 자다가 허전한 기분에 소스라치게 놀라 거실에 나가보니, 어두운 거실에 쪼그만 몸으로 혼자 누워 자고 있는 널 보고, 엄마가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었다.  '은지야 미안해, 혼자 두어서..'


또 한 번은 네가 태어난 지 한두 달 정도밖에 안 되었을 때, 엄마가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너는 자다가 깨었는지, 기저귀가 축축했는지 엄마를 찾아 보채고 있었다. 엄마가 빨래를 다 널고 갈 욕심에 바로 달려가지 앉자 너는 점점 더 큰 소리로 울고 보채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순간 정적과 함께 자지러지는 듯한 소리에 달려가 보니 네가 침대 바닥으로 떨어져 엎어져 있었다. 그때 너 콧대가 부러지지는 않았는지, 머리나 몸을 다치진 않았는지 엄마가 얼마나 놀라고 걱정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코도 머리도 몸도 다친 곳 없이 잘 자라주어 너무너무 고맙다. '은지야 미안해, 엄마가 너무 늦게 가서...'


또 미안한 일이 있다. 엄마가 엄마일 하고 싶어 이것저것 배우러 다닌다고 너를 4살 때부터 유모차에 태워서 늘 문화센터 가서 살았다. 3돌 지난 9월부터 몬테소리 어린이집에 맡기고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수업 들으러 가는데... 너는 정말 매일 아침마다 빠지지 않고 울었다. 어린이집 가는 길 내내 우는 네 목소리를 들으며, 그때 정말 '애가 끊어진다'는 뜻이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한 달 내내 울고 안 가려는 너를 억지로 억지로 달래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섰던 모진 엄마였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네가 다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해마다 바뀌게 되었다. 늘 새로운 환경과 선생님, 친구들에게 적응해야 했던 우리 쪼맨한 이쁜이, '은지야 미안해, 엄마가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너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도 엄마의 빈자리를 싫어했다.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없는 집을 무서워했고, 집에서 간식 차려주고 기다리는 엄마가 있는 친구들을 늘 부러워했었다. 사춘기가 되어서도 엄마가 일하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엄마를 원했었다. 언젠가 엄마에게 '엄마 꼭 지금 일하셔야 해요? 나중에 일하면 안 돼요?'라고 물은 적도 있었지.. '미안하다 은지야, 엄마는 너무 늦게 시작한 거라고, 그때가 아니면 그 일을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네가, 어제 수능시험을 보고 왔다. 그리고 내일은 네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의 면접을 보는 날이다. 마지막으로 면접관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며, 엄마에게 어떤지 묻는 너를 보며 엄마는 새삼 요즘 너를 다시 깨닫는다. 너는 고3 같지 않은 고3이었다. 스스로 걱정도 스트레스도 많았을 텐데... 늘 내색 않고 기분 좋아 보이는 네가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상상을 하면서 버텼다는 너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은지가 참 대단한 아이였구나'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 은지야, 내일 면접관들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쏘아 보내고, 이미 합격하여 축하받는 너를 상상해보렴. 그리고 내일 면접에 가서 떨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 충분히 잘 하고 오렴! 너는 이미 훌륭하고 좋은 아이니까, 내일 면접관들에게 너의 모습과 가능성을 그대로 잘 보여드리기만 하면 돼! 사랑하는 우리 은지, 파이팅! 너의 꿈과 미래를 축복하고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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