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에 빠져들려던 아들을 깨우고 가슴을 친 순간
외출을 유도하는 따사로운 햇살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다용도실 창 너머로도 빛이 환하고. 환기를 위해 여닫는 창문 밖에는 약국이 보이는데 아침과 오후에 마스크를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매일 구경하곤 한다. 상가 건물 옆 앙상한 나무에 진분홍 꽃이 유난히 빛났다. 꽃을 본지 며칠은 되었는데. 따뜻한 날인가, 봄이 되었나 하며 오늘에서야 온지도 모르는 봄을 가늠했다.
벌써 3월 중순. 바깥을 나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가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날짜를 남편이 알려주기에 비 오는 날 아이를 데리고 약국을 나갔었다. 줄 서도 못 살 것을.. 아이와 아침을 챙겨 먹고 여유로이 준비하여 나갔고 당연 당일 물량은 매진이었다.
오늘도 밖을 나갔다. 마스크 때문은 아니고 겨울 점퍼류 드라이클리닝 할인하는 기간이 오늘까지 였는데 날씨 좋은 김에 마스크와 소독 젤을 챙기고, 아이에게 동네 한 바퀴 돌자며 현관 밖 자전거를 태웠다. 약국 맞은편 상가에 있어서 금방이었고 내 볼일만 보고 들어가면 뒷감당하기 힘들 게 뻔하기에 조금 더 걸어내려 가 편의점을 들렀다.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달콤한 시간을 가지고 집 앞에 도착하니,
엄마, 한 바퀴 돈다고 했잖아?
음... 나는 왜 그렇게 말했고 실천하지 않았을까. 아이말에 대답은 않고 다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도 더는 묻지 않았다. 내리막길에서는 달리고 아이의 브레이크 신호에 멈춘 뒤 출발했다. 공원을 반 바퀴만 돌고 (진짜!) 집으로 돌아왔다. 신발 벗자마자 드러눕는 아들. 그 모습이 귀여워 미소를 머금고 겉옷을 벗겨주었다. 깨끗이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는 한숨 돌리는데 조용했다. 낮잠.. 자는 건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부리나케 이면지에 글을 썼다. 아이가 자고 있으니 벨과 노크는 삼가 달라는 메모였다. 오늘 도착 예정인 장난감 레고가 이 순간을 깨서는 안 되니까. 살포시 문을 열고 메모를 부착하고 닫았다.
삐리릭
천둥 같은 소리에 얼어붙은 내 몸. 그와 동시에 정적이 깨졌다. 사흘 동안 기다렸던 장난감이 도착했을까 봐 아이는 잠이 다 달아난 것이다. 순간 육성으로 “내 탓이오.” 스스로를 비난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확실히 아이 잘못은 아니었다. 하루의 휴식시간이 시작도 못한 채 끝이 났다. 누굴 탓할까.. 택배 온 게 아니라고 설명하고 피곤하니 자자고 어림도 없는 소리를 했는데 역시 택도 없었다. 잠시 씻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안방을 나왔다. 시간과 거리가 필요했다. 아이와 쉼 없이 보낸 후 일곱 시간 만이었다. 멍 때리다가 급 피로가 몰려와 잠을 청했고 아이는 혼자 놀기 싫다며 엄마 주변을 배회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밥과 잠보다 놀이가 최우선인 아이의 배가 고프지 않아 보여 오후 간식을 만들지 않기로 하고 티브이를 틀었다.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보자는 부탁에 아이가 고른 <카 3>. 아이 뒤통수를 보다가 다시 휴대폰을 보기를 반복하다 보니 영화가 금세 끝났다.
매 순간 사랑이 넘치는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사회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필요하다. 아이의 놀이 본능을 인정하나 나의 휴식시간도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오늘도 아이를 재우고 겨우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턱없이 부족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같은 생각을 매일 되뇌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우리 둘의 거리가 심히 멀어지지 않도록 애쓰자고 다짐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