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다니
아침에 일어나 요가 매트를 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두운 바깥이 밝아지는 걸 보면 내 안에도 밝은 기운이 차오르는 것만 같다. 그 힘으로 감사일기를 쓰고 커피 탈 물을 끓인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아침잠이 많은 아이를 둔 엄마라 늦은 아침에 이런 호사를 누린다. 커피를 마시며 (요즘엔 티라미수와 함께) 책을 읽다 보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아이를 볼 힘을 얻는다. 최소한 아이가 깼을 때 기꺼이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다.
“엄마 이거 하자.” 아이는 언제든 놀 준비가 되어있다. 노는 게 인생의 전부다. 먹고 자는 걸로 모자라 쉬까지 참으며 노니 설명이 필요 없다. 분명 끝은 있지만 두 시간이 지나면 몸이 뒤틀리고 늘 그렇듯 내가 먼저 백기를 든다. 성에 찰 때까지 놀아야 아이에게 좋댔는데, 충분히 논 아이가 커서 마음에 힘이 생긴댔는데. 허나 힘껏 놀기에는 엄마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에너지를 비축해두어야 체력적으로 지치니 않고 심적으로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총칼싸움과 베개싸움을 2주 하다가 “엄마는 공격 놀이.. 별로 재미없어.” 내뱉었다.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였고 의외로 아들은 쿨하다. “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건가. 엄마는 악당 아들은 착한 애, 엄마는 도둑 아들은 경찰로 지고 또 지면서 죽어도 살려내어 또 죽이는, 길고 지루한 싸움놀이는 체력 소진이 엄청나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놀고 싶은 엄마와 가만히 있을 때라고는 영상 볼 때와 잘 때인 아들, 심지어 자면서도 몸부림을 치며 내게 붙는다.
전날 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목이 잠겨 여기까지만 읽고 그만 읽겠다고 하니 따뜻한 물이 필요하단다. 비록 마시고 괜찮아지면 다시 책을 읽으란 뜻이었으나.. 끝내 그 책을 마지막으로 불을 껐다.
엄마가 소진될 때까지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이 상황도 끝날 때가 올 것이다. 엄마를 찾는 횟수는 줄겠지. 네 발로 걸어 다니고 하품 날 때까지 역할놀이하는 일도, 총 쏘는 효과음을 내거나 죽는시늉을 하는 것도 말이다.
신나게 놀아주진 못해도 대신 아이에게 엄마가 늘 함께 있다는 안심감, 집에서 지내는 편안함, 그로 인한 평온한 마음을 주고 싶다. 아이는 그걸로 충분하겠지. 아침에 쉬고, 아이 영화 볼 때 쉬고, 밤에 쉬면 엄마는 그걸로 충분할 테고. 대신 모든 것에 끝이 있다면 시간이 흘러 할 수 없는 것을 지금 하고 싶다. 아이가 ‘엄마’하고 부를 때 웃는 얼굴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