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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Mar 24. 2020

이토록 아이를 오랫동안 보는 일

더욱이 자세히



교육기관의 개학 연기와 더불어 온라인 강의로 가정에서 자가학습을 하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은 풍경. 동화책을 읽어줄 때마다 말풍선 속 글자를 궁금해하는 모습에 눈을 번뜩이며 ‘한글.. 엄마가 알려줄까?’ 홈스쿨 의욕이 일었다. 오래전 사두었던 학습지를 꺼내 신난 목소리를 장착하고 읽어주었는 데 따라 쓰고 반복해서 쓰는 일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아들은 3일 뒤 다시는 찾지 않았다. 한글은 아직 적기가 아닌가. 나도 더는 꺼내지 않았다. 가르쳐야 할까 마음에 걸린 것도 사실이다. 한글, 숫자, 시계 읽는 법.. 그런데 자세 잡고 하자면 싫다 하니 할 수 있는 한 자연스레 녹이며 알려주고 싶으나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어떻게 놀아주어야 하는지 몰랐던 건 아니다. 모른 체하고 싶었다. 학습에 대한 걱정도 지우기 힘든 데다 뭐든 좋으니 앉아서 놀고 싶었다. 놀이란 응당 재미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여 재미를 추구하기도 했다. 육아는 아이가 재미있어야 하거늘. 엄마도 중요하나 아이의 욕구가 우선되어야 할 진대.. 그러던 차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우리 공격 놀이할까?



그러자. 안 하면 뭐 할까. 베개를 집어 드니 아이는 동공이 커지고 광대가 솟는다. 한글&숫자공부, 창의력 기르기.. 다 잊는다. 아이와 엄마의 나이도, 엄마로서 지키고 싶었던 모습도 모두 지운다. 아무말대잔치로 움직이고 말하면 상황이 종료되는 때가 온다.







그래. 아들을 인정하자. 되돌아보면 조용히 사부작 사고를 쳤다는 엄마 말만으로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여 본다면 아들은 조용히 끝없이는 같아도 사고는 안치니 얼마나 다행인지. 집콕 4주 만에 아이의 진짜 모습을 볼 용기를 낸다.




먹은 거라곤 사탕 하나가 다였던 아이는 물놀이까지 하고도 에너지가 남아있다. 아이가 “엄마 배고파 밥 줘”하고 조르는 날도 언젠가는 오겠지. 혼자 먹을 빵만 구워 앞에서 먹방 놀이를 해도 그때만큼은 아이는 놀이에 시큰둥했다. 아이와 함께 기상해서 고요한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여 책을 꺼내 들었다. 집안일은 아이 앞에서 해도 책은 읽지 않는데 (아이 티브이 틀어주고 각자 시간 가질 때 빼고) 그냥 그래 보고 싶었다. 역시나 아이는 호기심을 안고 엄마를 찾아왔다. 자신의 동화책과 함께.





엄마 여기까지만 읽고 동화책 읽어줄게



처음 해 보는 부탁. 기대 없이 던진 말에 수락하고 나를 내버려 두고 혼자 놀았다. 약속한 페이지를 넘기고 책 읽는 데 빠져있으니 아이가 찾아와 다시 물었고 그제야 더 읽었음을 실토하고 그림책을 펼쳤다.







내가 아이를 본 게 맞나. 나는 아이를 보고 있다 생각했는데 보고 있지 않았고, 아이는 자신에게만 집중한다고 여겼는데 엄마를 보고 있었다. 이토록 아이를 오래 본 날은 없다. 더욱이 자세히. 하지만 앞으로도 아이를 봐야 한다면 더욱더 자세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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