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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Mar 26. 2020

비교하며 나아진다

느리게 크는 남자아이의 어제와 오늘




오전 일찍 집 밖을 나섰다. 전날 쿠키를 만들고 싶다던 아이와 함께 마트를 가기 위해서였다. 그 길에 주민센터와 파출소를 지나쳤고 아이는 뭐하는 곳인지 호기심을 내비쳤다. 들어가 보자고 해서 주민센터 문을 열었다가 조용한 분위기에 아들은 뒷걸음질 쳤지만 바로 옆 파출소와 공영주차장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우리 동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건가. 쿠키믹스만 사고 돌아와서는 관심을 확장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베란다에 보관해 두었던 한글 카드를 찾았다. 카드로 우리 동네에 대한 놀이를 하는 방법을 책에서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아들은 엄마를 쪼르르 쫓아와 제키가 닿는 다른 가방을 살펴보기에 그걸 꺼내왔다. 찾던 카드는 버렸는지 없었다. 아들이 찾은 것은 숫자와 한글 퍼즐. 가방을 쏟아 뒤섞인 퍼즐 조각들을 보더니 이내 관심이 사라진 아들이 떠난 자리에서 홀로 남은 엄마가 20개의 퍼즐을 다 맞추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오늘도 빠질 수 없는 베개 공격 놀이. 영혼 없이 휘둘러도 아이는 기뻐한다. 이기고 싶은 본능에 적극적으로 덤벼들어 엄마를 쓰러뜨리고는 곧 살려낸다. 한 번 누우면 일어나기 힘든 악당이라는 걸 아이도 이제 아는 듯. 30분도 채 되지 않아 강제 종료된 몸놀이 후 점심 차릴 생각에 피로가 몰려오는 엄마와는 달리 쌩쌩한 아들은 거실을 종횡무진 누비며 논다.




요즘 관심을 두는 물건은 드라이버, 건전지, 줄자.. 한 날은 전동드라이버로 아일랜드 식탁 의자 두 개를 가뿐히 해체한 뒤 카봇 장난감의 나사를 발견한 아들은 그마저 드라이버로 직접 분해했고 며칠 뒤 다시 조립하던 나는 혼이 나갔다. 결국 복원하지 못한 로봇.. 오늘은 혼자 줄자를 빼내며 숫자를 말하길래 두었더니 10이 넘어가서 띄엄띄엄 센다. 바로 잡아 주어야 할까, 혼자 잘 노니 내버려 두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알은체 하며 순서대로 숫자를 세니 아이는 곧 줄자 놀이를 멈추었다.









아이마다 적기가 다르다 믿고 교육에 철학이 달리 없어 아이를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새 여섯 살. 한글을 읽고 스스로 밥을 떠먹는 또래, 과학놀이를 하고 각종 독후활동을 하는 여섯 살이 있다. 숫자를 읽는 데도 2년이 걸린 아들인데 한글은 까마득하다. 가르쳐주기에는 아이가 관심이 없고 알려주지 않기에는 조바심이 난다. 크게 불안하지는 않으나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노출은 시켜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정작 아이는 관심이 없다. 자유와 자율성을 중시하기에 아이가 하자는 대로 놀고 있지만 고민은 계속되었다.







더 어릴 적 아이를 떠올린다. 손으로 밥을 집어 먹던 아이가 수저와 젓가락을 사용하고. 몸도 가누지 못한 채로 엄마의 손에 전적으로 의지해 씻겼던 지난날에 비한다면 그대로 집기만 하면 바르게 입을 수 있도록 내의와 속옷을 놓아두면 스스로 옷을 입는다. 엄마 아빠, 친구들과 대화하고 소통한다. 컨디션이 저조한 엄마 기색을 살피다가 이마를 짚으며 “뜨겁네”하며 엄마를 보채지 않는 날도 있고. 엄마의 한숨을, 표정을 알아차리며 본인의 행동을 반추하기도 한다. 어떻게 성장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는 그야말로 폭풍성장을 하였는데



한글, 숫자, 과학이 대수랴. 가르치지 않아도 괜찮을지 걱정이 앞설 때면 아이의 과거를 떠올린다. 기어 다니고 막 걷기 시작하던 시절과 단어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던 때를. 엄마 노릇이 버거웠던 나도 엄마임을 받아들이고 끼니를 차리고 함께 놀 궁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아이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보면 불안이 가시고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아이는 느리게 크지만 결국에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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