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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Dec 09. 2020

어정쩡한 육아

재미있지 않지만 착하지도 않은 엄마





리액션을 더 크게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동네에 있는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양육 상담을 해준다는데 괜찮더라고 했다. 호기심에 신청하여 아이와 30분 정도 놀이하는 모습을 보신 상담 선생님은 아이는 지극히 평범한 정상적 발달에 있고 장난감 놀이 집중시간이 평균적이라며. 다만 엄마의 리액션이 더 컸으면 좋겠다고 첨언했다. 양육 스트레스 체크에서도 특별한 소견이 없었는지도 물었던 것 같다. 괜찮다고 답했다. 진짜였다. 별로 힘들지 않았다.





아이가 커가며 깨닫는다. 육아가 얼마나 어려운지. 한 사람의 끼니를 챙기고 주변 환경을 정돈하고 교육을 고민하고 엄마가 모범이 되어야 하는 일상이. 참고 참다가 끝내 참지 못하는 엄마를 보여주는 일이. 잘하는 것 같지도 않고 노력해서 되는 것 같지도 않지만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때론 아이에게 미안하다. 재미있게 놀아주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아이와 함께하는 일 보다 혼자의 시간을 더 만끽하는 순간이 자주 있어서.











아이랑 싸워서 뭐하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치 앞도 모르고.. 끝까지 순둥이일 것만 같던 아이에게 반항기가 찾아왔다. 밥 먹자, 양치질 하자, 옷 입자, 씻자, 옷 벗자...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말들이 아이에게 한 번에 닿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진다. 한 번에 말을 들으면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은 아이가 없을 때 한다. 실제로는 싫어도 할 수 없다고 어른을 대하듯 아이를 채근한다. 칫솔이 너무 추우니까 (입을 가리켜) 문 좀 열어 달라고 한 게 양치질을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다.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잘 모르니까. 못하는 일 투성이인 나도 아이 앞에서는 잘 해내는 척 뽐냈다. 아이에게 엄마는 척척박사였고 똑똑한 어른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아이의 지적에 뜨끔하고 답하기 어려운 날이 늘어나며 엄마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아이도 엄마와 지낸 지 6년, 어린이집 생활이 4년. 세상의 이치를 점점 깨달아 간다. 동화 속 엄마와 실제 나의 엄마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 원하는 일만 하고 지낼 수는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중이겠지.











지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던 이유는 좋은 엄마, 이상적 엄마에 나를 욱여넣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는 육아서 속 인내심 많은 엄마가 아닌데. 있는 그대로 의 내 모습으로 원래대로 하면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반대의 사람이 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니면 리액션을 더 크게 해야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을까. 답을 내리고 싶은데 아이를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아이에게) 늘 하던 대로, 평소(의 나)와 다르게 힘껏 맞이해야지.





아들~ 잘 다녀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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