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애 Apr 05. 2021

확실한 게으름

일을 미룬다는 것




감기 몸살을 앓았다. 아이에게 옮았는지 반복되는 육아와 가사로 피로한 일상이 쌓였기 때문인지. 환절기에 유행하는 감기니까 피하지 못하고 걸렸나. 둘째 날 밤 기침이 심해 마스크를 쓰고 잤는데 입술 오른쪽이 불편해서 보니 부르텄다. 소아과 의사가 아이에게 비염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걸 듣고 화들짝 놀란 만성 비염환자는 스스로에게도 같은 진단 내렸다. 아팠던 첫날은 침대에 계속 누워 이불을 덮고 티브이를 봤다. 주말에 좀 괜찮아져서 창문을 활짝 열고 매트리스를 들어 올리고 청소기를 밀었다. 거실과 아일랜드 식탁은 금방 어질러진다. 모든 곳이 금방 되돌아온다. 깨끗하지 않은 상태가 원래의 모습인 것처럼.





머릿속으로 부푼 꿈들이 둥둥 떠다니는데 잡히질 않는다. 이상적인 이미지들과 대비되는 현실이 나를 괴롭히고, 괴로우니 현실을 외면한다. 매일 같이 거울을 보면서도  얼굴을  모른다. 셀카를 찍어보고 좌절한다. .. 화장  해야겠다. 고데기를 사서 머리를 말고 다녀야겠다. 그러곤 다시 그대로다. 나를 제대로, 자주 보지 않아서다. 원하는 모습이 있으면 일단은 적극적으로 움직여 보아야 한다. 실패도 해보고. 부끄러움도 느껴보고. 수치스러운 상황도 때로 마주하면서. 나태하고 게으름에서 얻는 편안함은 있을지 언정 그게 다다. 나이를 먹고 늘어지고 반복되는 일상만 남는 거다. 한없이 게으르고만 싶다. 깜짝 놀란 진심에 스스로에게 실망스럽지만 이제는 부정하지 않고 바라본다. 그럴 용기가 겨서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 곁에서 책을 읽고 살며시 나와 스트레칭을 했다. 오랜만이었다. 그게 다인 채로 멍 때리는 엄마를 아이가 깨운다. 빵과 바나나우유를 함께 먹는데 어젯밤처럼 로봇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한 시각이 차가 도착하기 20분 전. 다행히 그림 하나를 완성하고 늦지 않게 아이를 태워 보냈다. 헝클어진 이불, 널브러진 아이 그림들, 수북한 빨랫감. 이번 달부터 새로 시작하는 일들이 있어서 카페를 가고 싶은 생각에 앞서 집 정리를 어느 정도는 하고 나가야 하는지 진정 의문이 든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아침 동안 어질러진 집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 누군가 불쑥 들어올 일은 없는데.. 장난감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카페로 가지고 가야 할 노트북, 책, 노트, 필통을 가방에 넣고 나왔다. 나중의 노고를 상쇄하기 위해 미리 움직여도 피곤은 가시지 않는다.





어차피 나중에 해야 할 일들이라면 확실하게 미루자. 집안일을 내팽개치고 일을 하면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게으른 주부이고, 집안일에만 열심이면 자기 계발을 미루는 게으른 경력단절 여성이 아닐까. 이러나저러나 게으른 사람이니 확실하게 게으르면 어떨까. 부지런히 움직일 때 최고의 효율을 따지다 몸이 아프면 다 포기하고 누워버리는 것도 괜찮다. 아플 때 확실하게 쉬고 나으면 부지런해지면 되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스트레칭을 해야 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