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는 귀천이 없다
어젯밤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일찍 잠들어 7시 30분 알람이 날 깨워줬건만. 침대 위를 기어가 바닥에서 울리는 폰에 손을 뻗어 끄고 다시 이불속으로 돌아왔다. 눈을 부릅뜨다 이불을 폭 덮고 눈을 감았다. 아, 늦잠이다. 어제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직접 아이를 하원 시키며 집까지 걸어서 오며 쌓인 피로 때문이겠거니. 평소보다 30분 일찍 잠든 아이도 어제와 똑같이 늦게 일어났지만 "긴 바늘이 7이 될 때 나가야 하는데 지금 4다"라고 시간을 확인시켜주니 평소와 다르게 수월하게 등원 준비를 했다.
오늘의 할 일에 대한 생각의 칩은 빼고 라디오를 켰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한 일반인이 직장 상사에게 혼나고 한 행동이었는데, 상사도 없는 가정주부는 집안일에 그걸 적용해 보기로 했다. 무슨 일을 먼저 할까에 대한 생각은 굳이 하지 않으려 해도 몸이 먼저 빨래 바구니로 향한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다른 집안일을 하면 두 개의 일을 해낼 수 있기에 나의 집안일은 빨랫감을 고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탁기를 작동 시키고 싱크대로 향했다. 보통은 설거지와 함께 집안일이 끝나야 하는데. 이번에는 '오전에 청소기를 밀면 하루의 일상이 달라진다'는 출처 모를 말이 떠올랐다. 거실 베란다 문 앞에 수북이 쌓인 빨랫감을 개키려 바닥에 앉으니 라디오에서 깔깔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7080이 어릴 적 보았던 방송, 학창 시절 배운 과목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라떼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는 나도 라떼구나, 웃프다. 마지막으로 동화책, 스티커 책, 색연필,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기를 밀고 나니 집안이 정돈되었다!
끝나지 않은 일의 향연. 집 정리를 마치니 점심식사를 차려내는 일이 나타났다. 밥을 먹어야 하는구나.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시계를 확인하고 점심을 떠올렸다. 밥도 반찬도 없다. 물을 올려 끓이고 지금 먹지 않으면 물러서 먹지 못할 오이를 꺼내 상하지 않은 부분을 도려내 다듬고 채 썰었다. 김치도 송송 썰고. 계란도 삶기로 하고 물을 하나 더 올렸다. 오늘의 점심은 김치비빔국수. 종지에 시판 비빔 초장을 넣고 식초를 곁들여 섞어 김치 국물도 추가해 살짝 맛보니 새콤달콤하다. 모든 재료가 그릇에 담기면 마지막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추가해 비비는 걸로 하고. 물이 끓어오르는 대로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면 한 가닥을 짚어 호로록 먹으니 잘 익었다. 찬 물 샤워시키고 잠시 두는데. 이번에는 <바퀴 달린 집>에서 국수를 해 먹던 장면이 떠올랐다. 전문가들처럼 국수를 돌돌 잘 말려다 실패한 모습, 그전에 방송 편집자가 진짜 전문가가 국수를 말던 모습을 추가로 넣은 장면이. 상상하며 따라 했음에도 출연자들처럼 그냥 국수를 그릇에 넣은 모양새가 되었지만.
3시간이 걸렸다. 해왔던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돌려보고 시간을 계산하는데 마음이 미묘했다. 집안일과는 별개로 경제서적과 신문 읽기, 마케팅 공부, 독서모임 책도 읽어야 하는데. 아이 하원 시간이 있으니 카페에 두 시간 머무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어렵고 급한 일이 남겨졌다. 3일째 밤마다 조금씩 펼쳐 60페이지까지 읽었는데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되지 않는 독서모임 책과 넷북을 챙겨 왔다. 카페라떼가 두 모금 남았는데 글만 썼다. 책을 아직 읽지 못했는데... 아, 생각의 칩을 집에 놓고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