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단면

정리한다. 잊는다. 정리한다. 잊는다.

by 다애





두 달째 내 뒤꿈치를 따라다니는 단어가 있다. 정리. ‘정리해야 해. 정리. 정리.’ 아무도 없는 집에서 주문을 외듯 곱씹는다. 홀린 듯 스텝이 빨라지고 손이 분주해진다. 그런데... 주방이 엉망이다. 금세 물건이 쌓였다. 요거트, 우유, 아몬드를 몸속에 채우고 비워진 통들이 식탁 위를 채운다. 잠시 썼다가 급히 다른 일을 한다며 식탁 위에 올려둔 물건들이 빈 공간을 메웠다. 불과 3일 전, 비우고 치워서 깨끗했는데.





잊자. 머릿속을 정리해 버렸다. 지금은 그 편이 낫다. 한쪽으로 물건들을 밀어 놓고 아침을 차렸다. 식사를 마치면 빈 그릇을 싱크대로 옮기고 음식 부스러기를 행주로 훔치는 걸로 주방일을 끝냈다. 저녁 메뉴를 결정하고 밥을 안치고 설거지 볼에서 건조대로 그릇을 다시 옮긴다. 정리한다는 자체에 심취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차차. 탄내를 맡고서야 밥이 생각났다. 불을 끄고 고무장갑을 벗었다. 역시 요리에만 집중해야 해. 그래도 시작한 김에 해내고 싶다. 약간 식은 음식을 내어놓았지만 뽀득뽀득 마음이 씻긴 듯 시원하다. 저녁 식사를 마치니 다시 그릇이 쌓인다. 잊자..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꿈을 꾼다. 몸과 마음의 휴식과 정리 정돈된 집 안. 쉬면 어질러지고 깨끗해지면 피곤하다.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덩어리로 함께 굴러간다. 잘 굴러가지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굴러가면 되겠지 넘기다가도 기왕이면 부드럽게 갔으면 하고 바란다.






바닥이 타 버린 밥솥에 물을 부어두었다. 저녁 반찬으로 먹은 것 보다 더 남은 어묵조림은 내일 아점의 김밥 재료가 될 것이고. 그걸로도 모자라면 간편히 데우기만 하면 되는 피자 한 판이 냉동실에 있다. 내일의 주방은 어떤 모습일까. 정리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