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의 시작
우리 엄마는 요리와 집안일을 싫어했다.
"너는 공부만 해. 공부해서 성공하고, 나중에 결혼해서도 파출부 쓰고 살아."
저녁반찬 뭐냐고 물어봤다가
"뭐 먹는지가 뭐 그렇게 중요하니?"라며 짜증을 내던 엄마에게 상처받은 기억도 있다.
집안일이나 요리를 하는 엄마가 즐거워보인 적은 없었다.
가만보자... 엄마가 집 안에서 즐거워보였던 날이 있었을까?
엄마는 집에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밖에서는 에너지를 받고, 집에서는 힘들어보였다.
엄마가 집안일과 요리를 싫어하는 데에는 맥락이 있을 것이다. 내가 다 알 수는 없는.
아무튼 그런 엄마의 영향탓인지, 나는 집안일과 요리를 하찮은 일로 여겼다.
생산적이지 않고, 해도 티 안나는데, 안하면 티 나는 번거로운 일.
안할 수 있으면 안하고 사는게 좋은 일.
처음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을 맡아 하게 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일을 해서 얼마나 다행이야. 나는 집안일과 요리는 진짜 안맞지."라면서.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아이를 위해 요리를 해봐도 맛이 없었다.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들이는데 결과는 꽝인, 효율이 너무 낮은 일이라 생각했다.
아들은 엄마가 해주는 밥보다 배달요리를 더 좋아했다.
그랬던 내가, 퇴근하고 6시 30분에 집에 도착해서,
요리를 해서 가족들 밥을 해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밀키트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재료의 중요성을 잘 알았기에.
동물복지, 무항생제 육류, 목초우, 난각번호1번 계란, 쓸데없는 첨가제 없는 양념 등등.
최겸님의 집밥클래스 레시피, 홀썸레시피 등 건강요리 유튜브 채널을 참고하여 다양하게 시도했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경우도, 맛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가 분명했고, 과정이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날은 아들이 좋아하는 면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국수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쌀면을 이용해보기도 하면서 건강하게 먹일 방법을 찾아나갔다.
아들은 여전히 편식이 심한 편이고, 먹기 싫은 날은 안먹겠다고 선언하기도 하고, 과자를 자주 찾기도 한다.
그런데도 "엄마, 오늘 저녁은 뭐야?" "엄마 오늘은 나 이거 먹고 싶은데." 라고 말해줄 때 행복하다.
아마 엄마가 자기의 건강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에서 사랑을 느끼나보다.
그거면 됐다는 생각이다.
아들이 안먹어도 나와 남편은 건강하게 먹었으니 된거지 뭐.
우리 엄마나 여동생은 내가 요리한다고 하면 놀란다.
어느날은 아들은 아구, 딸은 대구를 좋아해서 생선 두마리로 쌍생선탕을 끓였다 하니 신기해한다.
우리 남편이 제일 신기해한다. 피곤하지 않냐고 묻기도 한다.
피곤한 날은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먹을 때도 있긴 하다.
의무가 아니기에 아마 지속할 수 있는게 아닐까.
순수하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25년 어버이날, 초등학생이 된 아들이 카드에 이렇게 써왔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요리를 잘해요? 요리해줘서 고마워요."라고.
여섯번째 알아차림.
나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는 것이 자존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아들이 엄마의 요리에서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내 생활과 나의 의식주를 정리하고 가꾸는 것이 나를 제대로 대접하는 일이다.
집안일과 요리는 한 가정의 자존을 지켜내는, 우주를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