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전쟁을 치른다.

나는 부모가 치른 전쟁 속 최선으로 길러졌다.

by Dr 정하늘의 Mecovery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특별한 외적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몇차례 글쓰기를 시도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행동을 유지하지 못한 이유는 목적성이었다.

'이거 해서 뭐 돈 나오나?'

'이거 한다고 누가 알아주나?'

'이거 할 시간에 생산성 높은 일을 하는게 낫지 않나?'


이제 나는 직장도 없었고, 시간도 많았다.

만날 사람도 없다보니 내 경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일도 없었다.

기록할 시간이 있었고, 기록하는 것 자체가 좋았고, 목적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지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한 데이터를 아카이빙하는 것이었다.




어느날 아빠와 나눈 대화에 대한 내용을 글로 썼다.

우리 아빠는 자식들을 강하게 훈련시키기 위해 우리가 어릴 때 꼭 등산을 데려갔다.

토요일에는 모악산에 가야 했고, 1월 1일 일출은 새벽산행을 해서 일출을 정상에서 봐야 했다.

지리산 천왕봉에 다녀와서 무릎이 퉁퉁 부었던 일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등산을 싫어한다. 등산을 하는 과정에서 즐거운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에게 "과정의 즐거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정상에 오르는 것만 중요하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내가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라면서 아빠를 원망했다.

아빠는 나에게 대답했다. "내가 니 나이 때, 만약 누군가가 나를 천왕봉에 데려갔다면, 나는 더 큰 꿈을 꿔서 더 큰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그 답변을 들을 때만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 답변을 글로 쓰는데 갑자기 울컥한 생각이 들었다.


'아, 아빠는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힘든 평일을 보내고 나서도, 자식들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말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산을 올랐구나.'


그 일을 계기로 부모님을 수용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그때 그것이 최선이었음을.

나에게 의대를 가라고 한 것도, 하기 싫은 등산을 시킨 것도,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한 것도,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아냐며 겁을 주었던 것도,

자신의 세계에서 가장 좋은 것을 자식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의 삶이 어떤 맥락에서 진행된 것처럼, 부모의 삶도 그렇게 진행된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구나.

더 이상 내 삶이 아쉽다고 느껴지거나 후회되지 않았다.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니, 감사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2023년 12월에는 부모님께 감사를 담은 크리스마스카드를 전달했다.

열심히 살아주어 감사하다고, 부모님의 치열함 덕분에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나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세계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동안 원망만 했던 것 같아 죄송하다고,

진심을 담아 꾹꾹 적어 전달했다.


자식의 입장이라는 것이

부모가 100번 잘해줘도, 하나 상처받은것만 계속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책에서 봤던 글,

모두에게 친절하라,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쉽지 않았다.

나에게 친절해지니, 부모에게 친절해지게 되었다.

나를 받아들이니, 부모도 그런 맥락에서, 그저 최선을 다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 깨달음은 타인에게, 내가 절대 이해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때문에 받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부정적 감정소모를 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일곱번째 알아차림.

자기 수용은 타인에 대한 수용으로 확장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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