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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Dec 16. 2022

연애라는 거울

왜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걸까. 항상 버림받을 것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걸까. 

“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이라는 책에서 답을 찾았다. 요즘은 많이들 알고 있는 애착의 분류를 연애에 적용한 정신과 의사의 책. 책의 분류에 의하면, 나는 적확히 불안형 애착이었다. 그래서 회피형 애착을 가진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거다. 안정형 애착을 가진 좋은 남자에게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함으로써 롤러코스터 타는 듯한 격정(강렬하고 갑작스러워 누르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남자를 만나야 사랑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불안형 애착을 가진 인간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나였다. 남자를 잘 고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내가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 




삼 남매 중 장녀, 시키는 것을 성실히 이행하는 모범생인 나는 부모님의 트로피 자식이었다. 부모님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책이 좋아서가 아니라 책 읽는 모습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서 책도 많이 읽었다. 나중에 알게 된 단어지만, 만족지연능력(장래의 더 큰 성과를 위해서 자신의 충동과 감정을 통제하는 눈앞의 욕구를 참는 능력)치가 높았다.      


감정과 욕구를 통제하는 데 익숙한 사람. 그 기회비용으로 얻게 된 성과를 통해서만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살아온 사람. 나 자신에게도, 부모에게도 온전하게 수용되지 못했던 내 감정과 욕구의 결핍. 결핍을 연인 관계에서 메우고자 했다. 그 욕구가 불안과 집착이 되고 연애는 끝나는 식이다. 소개팅에서는 빛나던 내가 연애가 시작되면 빛을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관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나의 자존감을 더 쪼그라들게 하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연애라는 거울을 통해 들여다본 나는, 자존감 낮은 불안형 애착의 인간이었다.      




아빠는 극 현실주의인 사람이다. 놀이공원에 가면 “공부 열심히 하면 놀러 오는 거고, 공부 안 하면 일하러 오는 곳이다.”라고 했고, 충치 치료를 받고 온 나에게 “니 입속에 소 한 마리가 들어갔으니까 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했고 (금으로 때우는 비용이 좀 나왔다), 옷을 사러 가서도 “학생이 교복만 있으면 되지.”라고 하는 식이다. 

어느 날 가족모임에서 아빠는 어김없이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자식들에게 계산서를 청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평소라면 그냥 넘겼겠지만, 그날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이 자식의 자존감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아시느냐. 부모라면 무조건적인 사랑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지 않으니 밖에서도 대접받을 줄도 모르고 흙이나 주워 먹고 다닌다.”라고 말했다. 처음이었다. 아빠 앞에서 나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얘기한 것은. 서른을 코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귀히 여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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