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대부분을 정답을 찾고 싶어했다.
학교시험, 수능, 의사고시, 전문의시험까지 정답을 맞추는 데 익숙했으니까.
진료를 볼 때에도 진단명과 해결책 (약 혹은 수술)이라는 정답이 있다고 배웠다.
관계맺기, 일하는 방식에도 정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리나 원칙같은 것일 수도 있다.
정답을 알려준다는 강의, 책도 사보기도 하고, 역사공부를 하기도 했다.
정답: 正答 - 옳은 답
정답을 모르면 생존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했으니까.
이제는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포기했다는 말이 맞겠다.
대신 시간이 될 때마다 세상의 다양한 관점을 수집한다.
그리고 내 관점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관점: 觀點 -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
만약 아직도 내가 정답을 찾는 사람이었다면? 내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 일을 영영 못했을 것이다.
도저히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게, 내 안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관점은 내 경험과 지식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내 관점을 세상에 내어놓는 이유는 두가지다.
타인에게 이야기해보지 않으면, 내 관점이 무엇인지 정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고,
세상에는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때문이다.
예전에는 교과서와 논문이 정답이라고 생각했고,
환자분이 내가 아는 지식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할때에는, "그럴리가 없다." "나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면, 정답 대신 관점을 고민하게 되면, 환자분의 이야기가 새롭게 들린다.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약에 대한 관점이 가장 많이 바뀌었는데, 약 먹고 뭔가 불편하다고 하면 일단 복용을 중단한다.
논문, 통계분석보다 중요한 게 우리 각자의 몸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AI는 몸이 없지 않은가? 몸의 신호는 AI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그 신호를 해석하지 못하는 의사는 AI에게 대체되지 않을까?
정답이 다닌 다양한 관점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지는 모르겠다.
관점을 가진 개인의 삶의 질은 높여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그랬으므로.